[류순열 칼럼] 유시민의 빽바지, 류호정의 원피스

류순열 / 기사승인 : 2020-08-05 15: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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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원피스가 논란이다. 17년전 유시민의 '빽바지'가 떠오른다. 2003년 4월28일 국회 의원회관 오영식 의원실. "내일 유시민 선배가 의원 선서를 좀 다르게 할 모양이던데." "어떻게?" "뭐 정장 안하고 좀 다르게…"

"그런 것도 기사가 됩니까?" 무안해질 만큼 유시민 의원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네. 그런 것도 기사가 됩니다." 목구멍으로  대답을 삼키고 서둘러 '단독 기사'를 송고했다. 틀림 없이 논란이 될 거라고 확신하면서.

노타이에 허연 면바지. 다음날 그의 국회 첫 등원 패션은 캐주얼이었다. "여기 탁구치러 왔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니나다를까 국회 본회의장에선 고함이 터졌다. "국회 모독"이라며 퇴장하는 의원도 있었다.

유 의원은 결국 다음날 정장 차림으로 의원 선서를 다시 해야 했다. 그는 "튀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넥타이를 매기 싫어서도 아니며, 국회를 모독해서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일하기에 편한 복장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상은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폼만 잡는 '금배지'들을 비꼬고 싶은 심리가 작동한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그는 얼마전 한 방송에서 "제가 삐딱이 기질이 있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게 보기 싫었다"고 '실토'했다.

▲ 2003년 국회에 첫 등원한 유시민(왼쪽) 초선 의원,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 둘 모두 복장이 자유롭다. [뉴시스]

4일 국회 본회의장의 류호정 의원은 무릎 위까지 훤히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이었다. 바로 논란이 일었다. "때와 장소에 맞게 갖춰 입는 것도 예의", " 국회의 격을 떨어뜨린다" 정도는 점잖은 편. "소개팅 나가냐" "다음엔 더 야하게 입고 나와라."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엔 비난과 성희롱이 꼬리를 물었다.

17년이 지났는데 논란은 판박이다. 옷차림으로 굳이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옷차림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미니스커트나 찢어진 청바지도 아니지 않은가. 어느 네티즌의 일갈처럼 국회에서는 꼭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류 의원이 항변하듯이 국회 권위가 정장으로 세워지는 건 아니다.

가볍고 단순한 논란만은 아니다. 복장 논란은 복장 자체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인지 모른다. 우리는 오랜 세월 '니편, 내편'으로 편갈라 싸우는 데 익숙하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이분법 세상에서 민주주의 요체인 다양성은 숨쉴 공간을 잃는다. 보편적 가치는 중심을 잃고 '내로남불'이 판친다. 그렇게 진영논리, 흑백논리에 절어 살다보니 다름을 인정하기 힘든 거다. 

내친김에 던져본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기는 한 건가. 아직 먼 듯하다. 우리 사회 곳곳엔, 국민 개개인의 내면엔 아직 독재의 유산, 전체주의 사고가 똬리틀고 있다. 


▲ 류순열 편집국장


U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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