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 시인 신간…"역사의 아픔에 헌화하고 약자에 손길"

이원영 / 기사승인 : 2020-09-22 16: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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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 던지는 단상 111편 모아
'생은 아물지 않는다' 출간

"이산하 시인은 문인이 문학 안에서만 뛰놀거나 감상에 젖어 있어서만은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몇 안 되는 귀한 사람이다. 역사의 아픔에 헌화하고 생의 최전선에 몰린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게 부드럽게 손을 내민다. 문학이 시대정신과 결을 같이 할 때 압도적으로 찬란해진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김진명·소설가)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 시인이 생애 첫 에세이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펴냈다. 2,3 페이지의 짧은 단상 111편을 모았다. 얼핏 새로운 형태의 시집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에세이는 시를 닮았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었던 <한라산>의 시인. 글 하나하나에 담긴 그의 감성은 단순히 따뜻하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그 안에 담긴 성찰과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삶이 지닌 낯섦에 직면하게 한다. 세상과 공명하고 타인을 보듬는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는 일까지 하는 삶에 관한 그의 이지적 자세는 포스트코로나가 거론되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너와 나,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우희종.서울대학교 수의학대학 교수)

두 사람의 서평처럼 그의 글들은 짧지만 무겁다. 아프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빛과 희망을 건져내는 그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돌아보고, 생각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에세이는 수상록에 가깝다. 글 전반에 걸쳐 그가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치열하게, 바르게.

그의 별명이 된 <한라산>은 30년도 더 된 군사정권시절 1987년 사회과학 무크지 '녹두서평' 창간호에 실린 연작시 제1부다. 제주 4.3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이 시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어 고문과 함께 실형을 살아야 했고, 그 사건은 그의 일생을 관통했다.

▲이산하 시인의 에세이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 표지.


이 시인은 최근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오랜 트라우마를 안간힘으로 망각하려 애썼지만 비등점에 이른 듯하다. 헤집어서 아프겠지만, 이제 나의 상처를 정면으로 보기로 마음 먹는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기소한 이가 바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다. 군사정부의 시선에 거슬리는 시 한 편 썼다고 사람을 초죽음으로 만들었던 주인공들이 버젓하게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으로 포함되는 시대를 그는 무척 힘들어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수상록에는 제주 4.3사건, 세월호, 유대인 학살과 같은 아픈 근대사의 편린들이 자주 등장한다. 지우고 싶지만 결코 지워서는 안 되는 유린당한 역사 속에서 그는 꽃을 보고, 빛을 느끼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더 잔인한 동물이 바로 나 자신이다. 그 위험을 모르기 때문에 더 위험한 동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장 큰 바퀴벌레다."('가장 위험한 동물' 중에서)

이 시인의 수상록은 시대의 탐욕을 고발하고 동시대인의 반성을 끄집어내며 약자를 보듬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잔잔하게 평화로우면서도 울림이 크다.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부산 혜광고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필명 '이 륭'으로 등단해, 그해부터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석방 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인권단체 등에서 활동했다.

U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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