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다르면 적"…민주주의 훼손하는 '문빠', 어디서 왔나

장기현 / 기사승인 : 2021-01-15 17: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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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나누고 적 만드는 방식…文대통령, 유일한 피아구분 기준
'노무현 서거' 부채의식에서 출발해 독선, 배타성 띤채 권력화
금태섭 "방조하는 대통령 문제"…'트럼프 몰락' 반면교사 삼아야
"독선과 아집 그리고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역사 발전의 장애물입니다. 우리 정치도 이제 적과 동지의 문화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 경쟁의 문화로 바꿔나갑시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영원한 동지로, 노무현 정치를 계승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독선과 아집, 배제와 타도가 난무하고 있다. 발원지는 친문 강성 지지세력인 속칭 '문빠'(이하 문파·文派로 순화)다. 노 전 대통령 표현대로라면 친문 스스로 민주주의의 적이 되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들의 독선과 배제 바이러스는 더불어민주당을 타고 정권 전체로 번진지 오래다.

잘못은 절대 인정하는 법이 없고, 다른 의견은 포용은커녕 배척하기 바쁜 모습은 이제 문재인 정권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진보 진영의 원로들이 등을 돌려 비판 대열에 서고, 그 진보 진영에서 "문파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터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 발을 걸쳤던 한 법조인은 "의회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다.

문파엔 젊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거나 동조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엉터리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촛불 들고 광장으로 나섰던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어쩌다 같은 편에게서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손가락질을 당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인가.

▲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지난해 11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에서 강연하고 있다. [뉴시스]

무오류 착각과 다른 의견은 배척하는 독선

지난 6일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선 이재명 경기지사 출당 찬반투표가 벌어졌다. '이재명 출당을 위한 권리당원 투표' 게시글에는 "매번 정부 정책에 태클을 건다" 따위의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출당 찬성이 반대를 압도했다. 실제 효력은 없으나 친문의 배타성을 여지없이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 민주주의 DNA를 품었다는 정당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쫓아낸다? 민주주의 상식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 지사 뿐이겠나. 조응천 의원, 금태섭 전 의원 사례도 마찬가지다. 조 의원은 작년 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를 비판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표결에 불참했다가 왕따 신세가 됐다. 문파들은 "탈당하라", "검찰에 세뇌당했다" 등 온갖 모욕과 조롱을 퍼부었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금 의원도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과 관련해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고, 공수처법 표결에서 당내에서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졌다가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 4·15총선에서 공천받지 못하고, 징계까지 받고는 스스로 당을 떠났다. 사실상 출당 조치로, 정치보복을 당한 것이다.

금 전 의원은 14일 UPI뉴스와의 통화에서 "극성 지지자들이 익명성 뒤에 숨어 악플과 문자 폭탄을 쏟아냈고, 한밤 중에는 전화 폭탄까지 받아야 했다"면서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라면 문자나 전화는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독선과 배타의 흐름은 정책에서도 읽힌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은 시작부터 모순이었고, 결과는 '미친 집값'인데 절대 반성은 없다. 입으로는 "집값 반드시 잡겠다"고 해놓곤 손발은 거꾸로 투기에 꽃길을 깔아주는 정책을 편 결과인데도 반성은 없고 그저 유동성 탓, 전 정권 탓이다.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지난해 3월 26일 서울 마포구 '소박한 자유인' 사무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동훈 기자] 

문파의 맹목적 지지…등돌리는 진보 원로

이런 독선에 질려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진보 지식인들이 늘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 강준만 전북대 교수, 이른바 '조국 흑서'의 저자들까지. 이들은 사실상 문 대통령의 침묵 아래 더욱 심해지는 문파의 편 가르기와 맹목적 지지를 비판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배타성에 대해 "정부가 여론에 의한 정치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문제를 여론이라는 이름의 의견집단에 기대어 결정한다. 법의 지배가 가능치 않은 전제정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정당 간 협의도 없고 반대를 적대시하며 국정을 운영했다. 이것이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일찍이 팬덤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지난해 6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한국정치연구>에 기고한 '다시 한국민주주의를 생각한다'에서 "특정 정치인을 열정적으로 따르는 '빠' 현상은 강고한 결속력과 공격성을 핵심으로 한 정치운동"이라며 "조직된 다수가 공론장을 지배하면서 여론을 주도하며 시민사회 공론장을 황폐화시킨다"고 비판했다.

홍세화 전 대표는 문파의 맹목적 지지가 정부의 민주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경우 대통령이 펼치는 정책이 팬덤에 작용했다면 지금 문 대통령에 대해선 그런 게 없다. 지금은 그냥 좋은 인상이나 화려한 수사에 대한 단순한 호불호 감정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홍 전 대표는 그러면서 "이러한 감정에 빠지게 되면 옳고 그름, 진실과 허위를 분간하는 이성을 마비시킨다"면서 "이러한 현상이 민주주의 발전에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판의 핵심은 문파가 무오류의 착각에 빠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일단 편을 가르면 적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지만,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문파의 피아 구분은 오로지 문 대통령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로 정해진다. 같은 진영 사람이어도 문 대통령을 따르지 않으면 적폐로 몰아 응징하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원팀'은 곧 '문재인 중심'을 의미하고, 이는 타협 불가능한 전제가 됐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019년 5월 23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정병혁 기자]

노 전 대통령 비극의 죄의식으로 뭉쳐 '권력화'

문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문파의 시작은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출발한다.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열성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을 노 전 대통령처럼 잃지 않고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모였다는 것이다.

문파의 활동은 2015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현 국민의당 대표)가 '친문패권주의 청산'을 촉구하며 탈당하면서 본격화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고 있었는데, 곤란한 상황에 놓인 당 대표를 돕고자 문파가 빠르게 결집했다.

시작부터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UPI뉴스에 "당시 민주당 권리당원이 빠르게 늘었고, SNS 활동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때까진 괜찮았다"고 했다. "직후 촛불집회와 정권교체가 연이어 이뤄지면서 문빠가 악성화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을 그들은 업적이자 전유물로 여긴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그렇게 등장한 문파는 이제 당내 실질 권력이 됐다. 여당 의원들은 행여나 문파에 찍힐까 눈치를 본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문빠는 선명성을 무기로 당내 지배력을 높여갔고, 문 정부 들어서는 공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문빠 현상이 강해질수록 일반 국민과의 괴리는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만 교수는 자신의 저서 <싸가지 없는 정치(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에서 문파의 존재 이유를 '파킨슨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파킨슨의 법칙은 공무원의 수와 업무량은 아무 관계가 없고, 업무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이 공무원 수는 계속 늘어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공무원은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한다.

강 교수는 "공무원이 사회를 위해 일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문빠 역시 문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고 주장하지만, 문빠가 더 원하는 건 자기 자신의 즐거움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생각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재미"라면서 "이 재미를 위해 주로 하는 일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인데, 이걸 그만두게 되면 할 일이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문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文정치"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저서 <청와대 정부 :'민주 정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빠 문제'를 걱정하는데, 문제의 핵심은 '문빠'가 아니라 '문빠를 필요로 하는 정치'를 한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장은 "걱정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문빠 현상을 키우는 방식으로 청와대, 정부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라며 "선거 때 필요해서 조직했던 적극적 지지자 집단이 정부 운영의 권력적 축으로 재조직돼 더 격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문 대통령이 문파를 이용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문파의 극단적인 행태에 대해 '양념'이라고 비호했고, 이후로도 문파들의 극단적 행동을 제지하는 일은 없었다. 박 학교장은 "문 대통령이 정부를 운영하는 방식에 따라 문빠 현상은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으며, 그 성격 또한 달라진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금태섭 전 의원도 "문제는 문빠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정치지도자에게 있다"며 "지도자는 지지자의 선을 넘는 말과 행동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위해서도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간)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긴급사용 승인 소식을 알리고 있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

"트럼프는 선동, 문 대통령은 방치"

문 대통령의 묵인 아래 문파의 폭주가 계속되면 몰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분법적 팬덤 정치만 고집한 트럼프는 이례적으로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고, 두 번째 탄핵 위기에 몰렸다.

박상철 교수는 맹목적 팬덤 정치의 폐해를 트럼프 지지자들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현재 문빠는 한 개인에 대한 무조건적 방어와 상대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이건 지지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대통령이 이들을 설득하고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준 교수는 "트럼프가 적극적으로 팬덤을 선동했다면 문 대통령은 소극적으로 문빠의 만행을 방치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트럼프의 팬덤 정치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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