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무사'가 지켜도 레임덕은 내부에서 온다

김당 / 기사승인 : 2021-02-18 15:47:19
  • -
  • +
  • 인쇄
[김당의 단매] 검찰-PK 출신이 점유한 역대 민정수석 '잔혹사'
文, '비검찰 출신 민정수석' 소신 버리고 '임기말 호위내각' 구성
16년 전 문재인 민정수석 항의와 신현수 수석 사표는 '동의어'

"지금 검찰 개혁 얘기를 꺼내는 것은 대통령과 검찰을 이간질하고, 갈등을 야기시키려고 하는 짓이다."

 

▲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 뒤편에 조국 민정수석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 제공]


언제, 누가 한 말일까? 믿기 어렵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0월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한 말이다.

 

문재인 수석은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에 반발해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퇴함으로써 검찰 내부와 야당에서 검찰 개혁을 위한 '물갈이 포석'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자 일부 언론에 이렇게 반박했다.

 

당시 천 장관은 검찰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검찰총장에게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법무장관의 헌정 사상 첫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문재인이 '운명'에서 밝힌 천정배 장관의 첫 수사지휘권 발동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출마를 앞두고 펴낸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당시 상황을 서술하며 "나는 그(김종빈)의 처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비서실에서 △민정수석(2003. 2~2004. 2) △시민사회수석(2004. 5~2005. 1) △민정수석(2005. 1~2006. 5) △비서실장(2007. 3~2008. 2)을 역임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과 상반된 방향으로 수사를 전환하고자 할 때 발동됐다. 검찰이 검찰청법(제8조)에 규정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민정수석의 생각은 달랐다. 문제의 헌정 사상 첫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시점도 그가 노무현 정부에서 두 번째 민정수석을 할 때였다.

 

그는 당시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검찰청법에 입각한 원칙적 행위로 봤다. 과거에는 청와대(민정수석)와 장관이 전화나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수사에 직간접으로 간섭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검찰청법에 정해진 공식 절차인 수사지휘권을 발동함으로써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방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검찰총장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고 사퇴할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마련된 중요한 제도가 검찰총장 임기제"라며 "임기를 지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총장이 그런 일(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로 임기를 포기한 것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거듭 비판했다.

 

추미애의 두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과 문재인의 '유구무언'

 

▲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추미애 법무장관이 공개적으로 갈등을 표출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유구무언'이었다. [UPI자료사진]


이런 언행에 비추어보면,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역대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을 때, 문 대통령이 '유구무언'이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이른바 추-윤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반목이 장기화되자 둘 중 하나는 사표를 받으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문 대통령은 개입하지 않았다. 법무부-검찰을 소관기관으로 둔 집권당의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까지 나서 "조직을 위해 결단하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대놓고 사퇴할 것을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묵묵부답이었다.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에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고 검찰총장 임기를 지키는 것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일이라는 소신을 피력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탓할 수도, 윤석열 총장의 사퇴를 종용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2019년 7월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검찰권을 행사하는 데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당부했던 바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눈치 없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고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 문 대통령이 검찰 출신 신현수 변호사를 네번째 민정수석으로 기용한 것은 조국·추미애 장관 시절에 악화된 검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고민의 산물로 받아들여졌다. 부산경남 출신이 아닌 서울 태생이자, 검찰 출신인 신현수 변호사를 민정수석으로 기용한 것부터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검찰-PK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 역대 민정수석 '잔혹사'

 

한국일보가 지난해 1월 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조국 전 민정수석의 기소(직권남용 혐의)를 계기로 역대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비서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180명(34명 중복)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 가지 경향성이 발견된다.

 

우선 사정기관 업무를 총괄하다 보니 검찰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다. 김영삼 정부 이래 지난해 1월까지 민정수석을 지낸 인사 22명 중 검찰 출신은 16명으로 72.7%에 달했다. 이 전수조사 이후에 민정수석을 지낸 2명(김종호∙신현수)을 추가해도 2021년 2월 18일 현재 24명 중 검찰 출신은 17명으로 70.8%에 이른다.

 

민정수석의 영남 지역 편중 현상이 두드러졌다. 역대 민정수석 32명 중 부산∙울산∙경남(PK) 출신이 12명(37.5%)으로 가장 많았고, 대구∙경북(TK) 출신이 11명(34.4%)으로 그 다음이었다. 영남 출신이 71.9%(23명)인 반면에 호남 출신은 12.1%(4명)에 불과했다. 위 전수조사를 원용해 현재 기준으로 조사하면 역대 민정수석 34명 중 PK 출신은 13명(38.2%)으로 집중도가 더 커진다.

 

마지막으로 민정수석에게 권한이 집중되다 보니 상당수가 법의 심판을 받는 오점을 남겼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민정수석과 문재인 정부의 조국 민정수석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표적 사례다. 앞서 노무현 정부의 박정규 민정수석과 김대중 정부의 신광옥 민정수석, 전두환 정부의 이학봉 민정수석 등이 재직 당시의 비리혐의로 법정에 섰다.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을 한 노무현 정부에서도 PK 중심의 지역 편중은 예외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인사수석은 호남 출신(정찬용·김완기)과 타지역 출신(박남춘·정영애)이 번갈아 맡았지만, 민정수석만큼은 5년 내내 부산-경남 출신(문재인·박정규·문재인·전해철·이호철)이 도맡았다. 전해철은 목포 태생이지만 경남 마산에서 고교를 졸업해 PK로도 분류되고, 노 대통령이 변호사로 일했던 법무법인 '해마루'의 막내 변호사였다.

 

검찰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 역대 정부와 달리, 노무현 정부에서는 문재인·박정규·문재인·전해철·이호철 순으로 비(非)검찰 출신이 주류였다. '부산 386세대'의 맏형인 이호철 민정수석은 심지어 비(非)법조인이었다.

 

유일한 '예외'는 노 대통령과 동향(경남 김해)인 박정규 민정수석이다. 그가 검찰 출신임에도 유일하게 '예외'로 기용된 것은 노 대통령과 고시공부를 함께 한 인연으로 인간적 신뢰를 쌓은 데다가 전임 수석인 문재인 변호사와도 사법시험 동기로 서로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5년 1월 '이기준 부총리 파문'이 불거지자 정찬용 인사수석과 박정규 민정수석은 부실검증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함께 사표를 낸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은 수리되는 대신에 다시 민정수석으로 복귀했다.

 

文, '비검찰 출신 민정수석' 소신 버리고 '임기말 호위내각' 구성

 

자의에 의한 선택이든 타의에 의한 선택이든, 노무현∙문재인 변호사는 둘 다 법조계에서 '비주류'였다. 노 대통령이 문재인 변호사를 다시 민정수석에 앉힌 것도 검찰과 '연줄'이 없는 비주류 법조인이 검찰 개혁에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검사동일체 원칙'의 조직 관행이 유지되는 한 '검찰 출신이 주도하는 검찰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을 맡아선 안된다'는 문 대통령의 소신도 그 연장선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초대 조국 수석을 비롯해 김조원∙김종호 민정수석까지가 모두 PK(부산∙경남) 태생이면서 비검찰 출신이었다. 유일한 '예외'인 신현수 수석만이 서울 태생이며 검찰 출신이다.

 

신 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사정비서관을 지낸 인연으로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연거푸 문재인 대선캠프의 법률지원을 맡았다. 또한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국정원 적폐 청산'을 주도해 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그가 공격보다 수비할 일이 많은 임기 후반에 민정수석으로 기용될 거라는 관측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을 맡아선 안된다'는 소신을 가진 문 대통령이 원칙을 포기하며 PK 출신이 아님에도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에 기용한 것은 '임기말 수비용 포석' 말고는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연말 개각에서 전해철 의원을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한 데 이어 단행한 1.20 개각에서 친문계 인사 3명(정의용 외교부·황희 문체부·권칠승 중소벤처부)을 동시에 장관으로 발탁함으로써 임기말 안정적 국정관리를 위한 '친위내각'의 색깔을 더 강화했다.

 

전해철·권칠승·황희 3인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와 '부엉이 모임' 회원으로 함께 활동한 공통점이 있다. 2017년 문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의원들이 중심이 된 '부엉이 모임'은 계파조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지금은 해체된 상태다. 하지만 친한 의원들끼리 사적인 모임은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시절 황희 장관은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실에서, 권칠승 장관은 민정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권 장관이 민정수석실에 근무할 당시 민정비서관은 전해철 행안부 장관, 민정수석은 문 대통령이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부엉이 모임' 소속은 아니었지만 '친문'으로 분류된다.

 

▲ 박범계 법무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UPI뉴스 자료사진]


박범계 장관과 윤석열 총장은 사법연수원 동기(23회)이다. 윤 총장이 나이가 더 많아 사석에선 '석열이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추-윤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지난해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10. 22)에서는 이렇게 날 선 문답으로 맞섰다.

 

박범계 의원: '윤석열 정의'는 본 위원이 느낄 때 선택적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총장: 그것도 선택적 의심 아닙니까? 과거에는 안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신현수 수석은 '임기말 수비용'으로 아껴둔 마지막 카드

 

신현수 수석은 사법연수원 16기이다. 신 수석이 윤 총장보다 나이와 학번 그리고 기수가 모두 위여서 사석에선 윤 총장이 스스럼없이 형이라고 부르는 관계다. 두 사람은 고시 공부를 함께 한 인연도 있다고 한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조국-추미애 장관이 망친 법무-검찰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실제로 신 수석 부임 이후 법무-검찰 갈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원칙론자여서 개인적 친분에 의해 업무가 결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래서 각각 조국-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된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등에 대한 거취와 검찰 고위급 후속인사가 어떻게 진행될지가 가늠자였다.

 

문 대통령이 박범계 법무장관에게 임명장을 줄 때만 해도 '윤석열 총장이랑 잘 지내라'는 덕담을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박 장관이 검찰 인사에서 신 수석을 '패싱'하는 '사고를 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17일 청와대는 최근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와 관련해 "검찰과 법무부 견해가 달라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몇 차례 표명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검찰 측 의견을 반영해 이견을 중재·조율하려는 신 수석과 갈등을 빚은 끝에 조율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법무부 안을 밀어붙여 대통령 보고 및 재가를 거쳐 법무부안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신임 유영민(왼쪽) 비서실장과 신현수 민정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 룸에서 인사하고 있다. 이후 한달여만에 문 대통령이 '임기말 수비용'으로 아껴둔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해 충격을 주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는 신 수석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박 장관과 함께 신 수석을 '패싱'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민정수석의 사의 사실을 확인해준 것부터가 매우 이례적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껄끄러운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철 비서관은 조국 전 민정수석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신 수석은 참여정부 사정비서관 시절에 노건평 관련 비위를 노 대통령에게 스스럼없이 보고할 만큼 원칙론자로 알려져 있다. 검사 출신이지만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합리주의자라는 평가도 따른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그의 성품을 잘 알기에 초대 민정수석으로 고려했으나 검찰 개혁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기용하고 그에게는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기용해 국정원 개혁을 맡겼다.

 

하지만 '백면서생'인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에 앉힌 것부터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었다. 직권남용 혐의와 검찰의 기소, '조국 대전'으로 인한 국력 낭비를 떠나 인사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만으로도 그는 실패한 민정수석이었다.

 

조 교수는 민정수석 재임 중 주변에 '역대 최장 민정수석은 문 대통령'이라며 '내가 그 기록을 깨면 불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충(不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부터가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을 감시하는 민정수석의 역할을 포기한 셈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원칙론자인 그를 민정수석에 기용하자 '임기말 수비용'으로 아껴둔 마지막 카드를 쓴 것이라는 관측이 중론이었다.

 

문재인, 민정수석으로서 '명과 암' 모두 겪은 유일한 인물

 

민정(民情)은 본래 국민의 마음(민심)을 살핀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국정에 반영해 적절한 정책을 펼치도록 보좌하는 것이 민정수석의 역할이다. 대통령 친·인척 및 주변 인사 관리와 반부패·공직기강 업무뿐만 아니라 인사검증과 세평조회 등 인사과정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을 진다.

 

그러기에 신 수석이 한 달여 만에 사의를 표명한 것은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집권여당에게도 충격적이다. 사정과 인사검증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의 항의 사표는 자칫 청와대와 정부의 공직기강 해이와 '레임덕'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서 '명과 암'을 모두 겪었다. 문재인은 역대 민정수석 출신 중에서 유일하게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민정수석으로 검찰 업무를 관장했음에도 검찰 조사에서 수모를 당한 노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을 막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민정수석이라는 자리의 '명과 암'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가 '임기말 마지막 카드'로 아껴둔 신 수석이 사표를 낸 것은 문 대통령에게도 '충격'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만큼이나 원칙론자인 신 수석으로서는 박 장관과 이 비서관의 '패싱'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검찰 개혁 얘기를 꺼내는 것은 대통령과 검찰을 이간질하고, 갈등을 야기시키려고 하는 짓이다."

 

신 수석의 사표는 어쩌면 문 대통령이 16년 전 민정수석 시절에 했던 말과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이 원칙론자인 신 수석을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이 잘못 꿴 첫 단추로 인한 '조국 대전'의 여파가 '마지막 카드'마저 무용지물로 만든 셈이다. 정권이 호위무사를 내세워도 레임덕은 내부에서 오는 것일까.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2021. 4. 19. 0시 기준
114646
1801
104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