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금배지' 살려주는 '벌금 80만원'은 정의로운가

장기현 / 기사승인 : 2021-02-26 22:47:15
  • -
  • +
  • 인쇄
김홍걸·조수진 등 국회의원 '벌금 80만원' 선고 유독 많아
법원의 봐주기 판결…특별한 근거없이 판사들간 관행으로
檢 고무줄 잣대도…80만원 선고에 포기, 무죄 판결엔 항소
선거는 소송을 부른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당선이 시급한데 법 따지며 미적댈 것인가. 재판에 넘겨진다 해도 미리 걱정할 것 없다. 재판이 늘어지는 만큼 자리를 지킬 수 있고, 설사 유죄가 난다해도 벌금 100만 원만 넘지 않으면 그만이다. 선출직 공무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또는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아야 직을 잃는다.

선거판의 불법은 그래서 돌고 돈다. 늘 살아나갈 '구멍'이 있다보니 끝 없이 작동하는 악순환이다. 이런 흐름에서 '벌금 80만 원'은 상징적이다. 선거에서 불법을 저지른 '금배지'들이 숱하게 벌금 80만 원을 받곤 죽다 살아난다. 20만 원의 차이가 정치인의 '삶과 죽음'을 가른 것이다. 

'벌금 80만 원' 선고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유죄 판결'이 아니다. 정치인을 '살려주는 판결'이다. 이런 재판을 정치입김과 권력의 이해, 전관예우 같은 비법률적 요소가 배제된 순수한 법률 재판으로 볼 수 있을까. 적어도 헝겊으로 눈을 가리고 한손엔 법전을, 다른 한손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은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과연 공평하고, 정의롭고, 엄격한 법 집행이냐고 묻고 따질 것이다.

▲ 무소속 김홍걸 의원(왼쪽)과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 둘 모두 재산신고 누락으로 기소됐으나 '벌금 80만 원'을 받고 의원직을 지켰다. [뉴시스]

지난해 4·15 총선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1대 국회의원 27명 가운데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이는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과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 무소속 김병욱 의원 세 명뿐이다. 

총선 과정에서 재산신고를 누락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김홍걸 의원은 벌금 80만 원이 확정되면서 당선 무효 상황을 면하게 됐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도 1심에서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됐지만, 당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민주당 이소영·국민의힘 이달곤 의원도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아 살아났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제외하면 김홍걸·조수진·이소영·이달곤 의원을 포함해 총 13명이 100만 원 이하 벌금형이나 선고유예, 무죄 판결을 받았다.

'80만 원의 법칙'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국회의원 33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20대 국회에서도 19명이 100만 원 미만 벌금형을 받았고, 이중 벌금 80만 원이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 서초동 대법원 [장한별 기자]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의원의 직이 달린 만큼 판사들도 당선무효 기준을 민감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벌금 100만 원과 80만 원으로 정치인을 죽이고 살리는데 있어 뚜렷한 법률적 기준이 있느냐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UPI뉴스와의 통화에서 "'봐주기 판결'의 대명사가 된 80만 원 안팎의 벌금형은 사법부의 정무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심지어 명확한 근거가 아닌 상당한 재량으로 결정된다"고 일갈했다. "입법부·행정부의 '서로 봐주기'로 변질된 것으로, 삼권분립에 따른 '상호 견제'가 아닌 '상호 의존'으로 공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엄연히 불법을 저질렀는데도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선거범죄에 면죄부를 주고 '내일의 범죄'를 재생산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UPI뉴스에 "공직자로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가 인정되면 공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는 것 아니냐. 작은 실수라고 넘어가주면 안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원직 상실 기준인 벌금 100만 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이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는데, 100만 원이란 기준이 모호하다는 소수 의견도 나왔다.

남 국장은 "100만 원이라는 기준과 80만 원이라는 선고는 모두 자의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단순히 금액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면죄부를 줄 것이라 아니라 적발시 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했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처럼 공정하게,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검찰의 '고무줄 항소'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찰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은 김홍걸·조수진 의원을 상대로 한 항소를 포기했다. 하지만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호 의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즉시 항소했고, 기소된 이원택 의원이 1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자 "부당한 판결"이라며 항소했다.

최 평론가는 "검찰의 '고무줄 항소'도 법원의 '봐주기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안에 따라 자의적으로 판단한다"며 "검찰 내부의 기준이 있지만,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도 한다. 결국 검찰의 손에 국회의원의 생사가 달린 모습"이라고 말했다.

남 국장은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사전에 검증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 때부터 예금이나 주식, 부동산 등에 대해 바로 확인하면 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어느정도 걸러지게 된다. 그럼에도 발생한 부정에 대해서는 자격을 박탈하는 강력 제재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UPI뉴스 / 장기현 기자 jkh@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2021. 6. 11. 0시 기준
146859
1981
137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