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가즈오 이시구로 "사랑은 어디에 머무는가"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4-02 09: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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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신작 '클라라와 태양'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펴낸 첫 장편
인공지능 로봇소녀의 시선으로 본 인간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음'은 존재하는가"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딸의 도우미로 선택된 인공지능 소녀 '클라라'에게 아버지가 던진 질문이다. 유전자 공학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집필한 신작 '클라라와 태양'(민음사)에서 가즈오 이시구로(67)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지난 3월 영국에서 처음 출판한 이 장편은 한국을 비롯해 30개 나라에서 연달아 선보이는 중이다.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그것을 복제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클라라는 성실하게 답한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첫 장편을 선보인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그는 이 소설에서 인공지능 소녀를 등장시켜 인간의 '마음'에 대해 묻는다. [민음사 제공]

 

"물론 인간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한계가 있을 거예요. 폴 씨가 시적인 의미로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것에는 끝이 있을 겁니다. 조시의 마음은 방 안에 또 방이 있는 이상한 집을 닮았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게 조시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저는 최선을 다하겠어요. 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클라라는 조시라는 병약한 10대 여자 아이를 돕기 위해 엄마가 구입해준 인공지능 로봇 소녀.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에이에프'(Artificial Frend, AF)라고 명명하거니와 최대한 인간과 같은 이미지를 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클라라는 딸 조시의 걸음걸이는 물론 생각까지 성실하게 학습해서 '친구'를 돕는다. 클라라는 에이에프 매장 쇼윈도에 서 있는 자신을 선택한 조시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아이 고객도 외면했다. 야위고 걸음걸이도 불편한 조시를 돕기 위해 자신이 지닌 지식을 총동원해 헌신적으로 관찰하고 봉사한다. 그렇게 설계돼 있으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변함없고 헌신적이며 따뜻한 선의 앞에서 쉽지 않다.

 

클라라에게 '해'는 중요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태양광이 충전되지 않으면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인데, 이 소설에서 해는 그 이상의 주술적인 의미를 지닌다. 해가 좀 더 잘 보이는 쇼윈도에 배치됐을 때 클라라는 거리에서 추레한 늙은 남녀가 격하게 포옹하는 장면을 보았다. '레인코트 아저씨'와 '커피잔 아줌마'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눈빛이 마주친 후 서로 달려와 껴안은 것인데, 이를 두고 에이에프 매장 매니저는 오래 전 헤어졌다가 늙어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연인인 것 같다고 추측한다. 클라라는 다른 에이에프들에 비해 유난히 호기심이 많고 학습열이 강하다. 노숙인 거지 아저씨와 그가 안고 있는 개가 죽은 듯 미동도 없었는데, 다음날 해가 강력한 자양분을 그들에게 드리우자 살아나는 모습을 클라라는 내내 기억했다. 클라라가 조시의 집에 입주했을 때, 죽어가는 조시를 살리기 위해 '해'를 향해 간절히 기원하는 것도 이 장면에서 얻은 희망 때문이었다. 해가 바닥에 그리는 무늬는 클라라에게 희망이었다. 

 

조시가 클라라에게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설득할 때, 제시한 매력도 '해'와 관련된 것이었다. 조시는 해가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지만 휴식을 취하러 자러 가는 곳은 자기 집에서 충분히 잘 보인다고 속삭였다. 맥베인 씨 헛간에서 잠시 쉬다가 자러 들어가는 모습이 환히 보이는 집이라고. 클라라는 맥베인 씨 헛간까지 어렵사리 진출해 그곳에서 해에게 기원한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게 얼마나 주제넘고 무례한 행동인지 압니다. 당신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고 제 부탁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아주 넓은 마음이 있으니 한순간만 멈춰서 제 제안을 한번 들어 봐 달라고 부탁드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요. 당신을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 만 한 일. 만약 제가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는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자비를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이야기는 동화처럼 단순한 듯하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실제로 이시구로가 동화로 쓰기 위해 줄거리를 딸에게 들려주자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이시구로가 그린 미래 사회에서는 이른바 '유전자 편집'의 혜택을 받아 '향상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나뉜다. 향상된 아이들 반열에 들지 못한 조시의 남자친구 '릭'과 그의 어머니 '헬렌'은 세상과 겉돌면서 스스로 유폐된 존재들이다. 조시는 '향상' 됐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는 모르되 언니 '샐'에 이어 시름시름 소멸돼 가는 처지다. 10대 남녀 조시와 릭은 영원히 함께 하자고 맹세하지만 그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 조시가 건강해진다고 해도 '향상'되지 않은 릭과 같은 대학을 가기 어렵다. 릭의 엄마가 자존심을 팽개치고 오래전 연인에게 매달리는 이유도 릭의 미래 때문이다. 

 

클라라는 인간이 아닌 객관적인 '타자'의 시선으로 시종 진술을 이어간다. 인간의 자의식을 클라라에게 투사하면 한없이 헌신적인 '에이에프 소녀'에게서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클라라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하기 쉽지 않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대표작 중 하나인 '네버 렛미고'에서 장기 기증용 유전자 복제인간들을 화자로 등장시켜 '충분히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간들에게 묻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 바 있다. 복제인간 남녀가 서로 진실로 사랑한다면 장기 기증 유예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옛 학교시절 교사를 찾아가자, 교사는 "단지 너희에게 과연 영혼이 있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다"고, 기증 유예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부커상을 안겨준 '남아있는 나날'과 '네버 렛미고' 사이를 잇는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이 평가하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인공지능 로봇이 마음을 복사할  수 있는지, 과연 그 마음의 실체는 무엇인지 타자의 시선을 통해 묻는 맥락이다.

 

인간에게 고유한 무엇인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없다고 믿는 인공지능로봇 제작자 카팔디 씨. 딸이 죽으면 그 딸의 외피 속에 그동안 충분히 딸을 학습한 클라라를 넣어 상실을 대체하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망설이는 엄마에게 카팔디 씨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감상적인 사람들이죠.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감정을 지니고 살죠. 마음 한편에서 그걸 붙들고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내면에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계속 믿고 싶어 해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당신도 알고요. 우리 세대 사람들은 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놓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 생각을 버려야 해요."

조시의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이들의 계획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이 또한 완전히 인간만의 고유한 그 무엇을 믿는 쪽은 아니다. 그는 클라라를 붙들고 하소연한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번 신작을 동화로 쓰기 위해 딸에게 줄거리를 들려주었다가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민음사 제공]


"내가 카팔디를 미워하는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 카팔디 말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카팔디의 주장이 실은 옳다고. 내 딸만의 고유한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현재 기술로 파악해 복사하고 전송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과학이 확실하게 입증했다고. 사람들이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내내 서로 사랑하고 증오하며 함께 살았지만 모두 잘못된 가정에 근거해서 그랬던 거라고, 우리가 무지했기 때문에 일종의 미신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아온 거지. 카팔디는 그렇게 생각해. 나도 마음 한구석에는 카팔디가 옳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 두려운 거야."

 

허황한 미래의 디스토피아라고 일축할 수도 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SF 소설이 아닌, 인간의 마음 혹은 사랑에 대한 질문을 우화 형식으로 제시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클라라가 어떻게 조시를 건강하게 살려냈는지, 이후 클라라는 어떤 대접을 받고 '꺼져' 갔는지는 직접 독서를 통해 확인할 일이지만, 이러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은 대상의 문제인지, 사랑하는 주체의 마음이 우선인지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야적장 고물더미 속에서 꺼져가는 클라라의 마지막 말.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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