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5-06 10: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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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욕하는 건 정당하다 해놓고
친고죄인 모욕죄로 고소…자가당착
투명하게 이유 안 밝혀 비판 키워
"우리가 취하는 태도에 대해서 어떤 이유를 덧붙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해와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스위스 작가 롤프 도벨리의 <스마트한 선택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거니와 할 수 있는 말임에도 굳이 인용을 한 건 도벨리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 데다 의외로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이 취하는 태도에 대해 이유를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렇게 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얼마든지 이유를 물을 수 있지만, 하급자는 그렇지 않다. 상급자의 심기도 살펴야 하고, 미루어 짐작하는 게 속 편할 때가 많다. 행여 상급자의 눈밖에 나면 안되니까 말이다.

정권은 어떨까? 정권이 어떤 일을 하거나 태도를 취하면서 설명을 곁들이면 권위가 떨어질까? 독재정권에선 그럴지 몰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선 그럴 리 없다. 국민과 소통을 잘 하는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권은 어떤가? 놀라울 정도로 설명을 건너뛰는 일이 잦다. 특히 대통령이 자주 그러신다.

최근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지를 수백장 뿌렸다는 이유로 한 청년에게 경찰이 친고죄인 모욕죄를 적용해 검찰에 넘긴 사건을 두고 말이 많았다. 친고죄인지라 고소인이 누군지는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흥미로운 건 경찰도 청와대도 구체적으로 밝히는 걸 한사코 피하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는 점이다.

고소 사실을 2년간 전혀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청와대가 모든 걸 당당하게 밝히면서 이유를 설명하면 될 일인데, 왜 그래야 하나? 궁금하니, 이 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야당의 비판도 거세졌다. 야당에선 심지어 "대통령의 그릇은 간장 종지에 불과하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렇게 침묵했던 이유를 짐작하지 못할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2월 9일 JTBC '썰전'에서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하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요"라고 말한 바 있다. 2020년 8월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선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됩니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라고 했다. 이런 공언 때문에 머쓱해서 그랬던 걸까?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국민이 궁금해 하는 일에 대해 이유를 말하지 않는 건 일반적인 홍보나 PR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전혀 현명치 못한 일이다. 논란이 커지자 기자들의 취재를 통해 청와대가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상한 건 더 있었다. 이제 언론은 문 대통령이 고소를 지시했느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청와대는 '대리인의 고소'라는 점을 강조할 뿐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대리인의 사문서 위조'란 말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일을 자꾸 키워나가는 청와대의 솜씨가 놀라웠다.

그러니 진보 진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5월 3일 청년 목소리를 대표한다는 취지로 정의당 내에 출범한 청년정의당의 강민진 대표는 "독재국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범죄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모욕죄가 성립되어선 안 되는 대상"이라며 문 대통령이 고소를 취하하라고 촉구했다. 다음날엔 참여연대도 "한 시민을 상대로 한 최고 권력자의 모욕죄 고소는 국민의 권력 비판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모욕죄 고소를 취하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진보진영의 비판은 견디기 어려웠던가 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4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전단 배포에 의한 모욕죄와 관련하여 처벌 의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 사안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떠나, 일본 극우 주간지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는 등 국격과 국민의 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하여 대응을 했던 것"이라면서도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으로서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하여, 처벌 의사 철회를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뒤늦게나마 잘한 일이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안타깝다. 국민적 신뢰를 위해선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걸 모를 리 없는 문 정권이 왜 이렇게까지 일을 키워나갔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이해와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엔 너무 늦었다고 판단한다 해도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상의 방책은 정직이다. 행여 대통령의 '심기 경호'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떠받들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성찰하는 게 좋겠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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