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시대의 뉴노멀 '깍두기 인사' 바뀔까

김당 / 기사승인 : 2021-05-06 11: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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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김정은 읽기] 금수산궁전 '1호 행사' 사진 전수조사 해보니
김정은 시대 뉴노멀 '깍두기 인사'에서 지난 태양절 땐 상체 45도로 변화
집권초 年10회→작년 4회…김정일 관련 22회, 김일성 관련 17회 참배

금수산태양궁전은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을 안치한 곳이다.

▲ 금수산태양궁전의 김일성∙김정일의 채색 입상. 북한 주민들에게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생을 기원하는 민족의 영원한 성지(聖地)이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우리 군은 이곳을 '김가(金哥) 사체 보관소'라고 불렀다. 지금은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및 9.19군사합의를 계기로 '금수산 기념관'으로 순화해 부른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생을 기원하는 민족의 영원한 성지(聖地)이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아예 '금수산태양궁전법'을 채택(2013. 4. 13)해 이를 법제화했다.

 

금수산태양궁전법에 따르면, 금수산태양궁전은 주체의 최고성지(제1조)이자, 민족의 영원한 성지(제5조)이자 신성불가침(제6조)이다. 이에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경의를 드리는 것은 위대한 대원수님들에 대한 고결한 충정과 도덕의리의 표시"(제16조)이다.

 

금수산태양궁전법 제정은 '어버이 수령'들을 추모하는 성지로 법제화함으로써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제도화하려는 조치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별명도 '백두공주'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생일(4∙15 태양절)과 김정일의 생일(2∙16 광명성절)은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날'이다. 김일성의 사망일(7월 8일)과 김정일의 사망일(12월 17일)은 '민족 최대의 추모의 날'이다.

 

북한에서 태양절과 광명성절은 9∙9절(9월 9일 북한정권 수립일), 쌍십절(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일)과 함께 '4대 명절'이다. 이런 날들만큼은 김정은과 당∙정∙군 지휘성원들이 빠짐없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경배한다. 이번 태양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한 관영매체에 실린 이번 태양절 '1호(김정은) 사진'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김여정이었다. 김정은과 동행한 부인 리설주와 측근 조용원 당 조직비서 등과 견주어 90도를 넘어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과도하게 허리를 숙인 모습 때문이었다.

 

너무 지나치게 허리를 숙인 나머지 무게중심과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신성불가침의 성지'에서 '백두공주'가 고꾸라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 김여정의 90도가 넘는 '코 박기 인사'(맨위 사진 왼쪽)는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0월 당창건 기념일 참배 때도 앞줄의 김여정(위 사진 맨오른쪽)은 이번 태양절 때와 같은 각도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를 숙였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김여정의 '코 박기' 인사는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0월 당창건 기념일 참배 때도 앞줄의 김여정은 같은 각도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를 숙였다. 다만 그때는 카메라에서 가장 먼 오른쪽 끝에 있었고, 이번에는 카메라와 가장 가까운 왼쪽 끝에 있었다. 이번 사진이 유독 눈길을 끈 배경이다.

 

하지만 과거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방식과 비교하면 이번 태양절 참배는 남달랐다.

 

우선, 다른 때와는 달리 김정은 당∙정∙군 지휘성원들을 대동하지 않고 가족∙측근만 대동한 채 '분리 참배'했다. 조선중앙TV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김정은은 부인 리설주와 '측근 3인방'인 조용원 조직비서, 김여정∙현송월 부부장, 그리고 박정천 군 총참모장 등 5인만 대동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10월 당창건 75주년 기념 심야 열병식 때 자신이 입은 검정 가죽 롱코트와 똑 같은 복장을 김여정∙조용원∙현송월 3인만 입도록 배려해 측근 3인방 이미지를 연출한 바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이 입은 카키색 실크 점퍼 스타일과 같은 맞춤 주문 점퍼를 기념일에 측근들에게 하사품으로 선물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 2017년 12월 민족최대의 추모의 날(김정일 사망일)에 '나홀로 참배'한 김정은.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캡처]

 

노동신문에 공개된 역대 참배 사진을 전수조사해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나홀로 참배(17. 12. 17)하거나 부인 리설주만 대동하고 참배(16. 2. 16)한 적은 있지만, 지휘성원들을 대동하지 않은 '분리 참배'는 처음이다. 북한은 지난해 태양절 때는 김정은 참배 여부를 공개하지 않았다.

 

노동신문은 4월 16일자에서 최룡해∙리병철∙김덕훈 등 당중앙지도기관 지휘성원들의 참배 사진은 3면에 따로 실었다. 지휘성원들의 참배 일시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관행으로 보면 김정은과 같은 날(15일) 시차를 두고 참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동신문 1면에 공개된 '1호 행사' 사진을 보면, 태양궁전 내부 포토라인에는 거수경례하는 박정천 다음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김정은과 리설주, 조용원, 김여정까지만 보이고 현송월을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이 밑줄 치며 읽는 노동신문 사진의 한 프레임 안에 리설주와 김여정, 그리고 현송월 3인의 여성이 노출되는 것을 피해 의도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도 주민들 사이에 김정은과 현송월과 관련된 이런저런 소문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호 행사'의 과거와 다른 참배 진용에 대해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체제연구실장을 지낸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김정은을 포함한 6인방을 평양이 아닌 지방에 체류할 때도 중요 결정을 할 수 있는 인사∙조직, 정책. 핵∙미사일, 선전선동 분야의 핵심참모로 구성된 최정예 인너서클(inner circle), 즉 일종의 '움직이는 사령탑'으로 본다.

 

참배 진용만 달라진 게 아니다. 지난 10년간의 금수산태양궁전 '1호 행사'를 전수조사 해보니 김정은이 허리를 굽히는 각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  2012년 집권 이후 김일성∙김정일 입상에 경의를 표하는 기준선에서 허리를 숙인 사진을 보면, 김정은은 이번 태양절만 빼곤 한결같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인 '깍두기 인사법'을 유지했다. [노동신문, 조선중통신 캡처]


2012년 집권 이후 김일성∙김정일 입상에 경의를 표하는 기준선인 일종의 '포토라인'에서 허리를 숙인 사진을 보면, 김정은은 한결같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인 '깍두기 인사법'을 유지했다. 조폭들의 허리 굽히기 충성경쟁을 연상시키는 '깍두기 인사'는 김정은의 짧게 쳐올린 헤어스타일과 함께 김정은 시대의 '뉴노멀'로 간주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태양절에는 고개만 90도 직각으로 숙였을 뿐, 상체는 바로 옆에 선 부인 리설주와 비슷하게 45도 각도로 굽힌 일반적 인사법을 유지했다. 고개뿐만 아니라 상체도 90도 각도로 굽혔던 과거의 인사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하나는 허리 디스크나 허리 부상으로 상체를 직각으로 굽히기 힘들거나 고도비만 같은 건강상의 이유로 45도 각도만 숙였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의 2018년 당창건 기념일 참배 때도 김여정 옆에 선 노쇠한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만 허리가 불편한 듯 상체를 어정쩡하게 숙인 모습이 눈에 띈다(1935년생인 리재일은 지난 2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 김정은 집권 전반기의 금수산태양궁전 '1호 행사' 사진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캡처]
▲ 김정은 집권 후반기의 금수산태양궁전 '1호 행사' 사진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캡처]


다른 하나는 이제 서서히 목과 허리가 뻣뻣해질 때도 됐다는 관측이다. 집권 초기에는 '백두혈통' 권력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선대에 대한 효성을 부각시키는 '깍두기 인사'가 필요했다. 이제는 집권 10돌을 앞두고 있는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가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어떤 추론이 맞는지는 오는 7월 8일 김일성 사망일 참배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정은이 상체를 숙인 각도의 변화 못지 않게 참배 횟수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되기 때문이다.

 

금수산태양궁전 '1호 행사' 사진을 전수조사 해보니, 관영 매체에 실린 '혁명활동보도'를 기준으로 김정은은 2012년 신년 인사부터 2021년 4∙15 태양절까지 63회 참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 김정은은 지난 10년간 금수산태양궁전을 총 63회, 연평균 6.5회 꼴로 참배했다. 연도별 참배 횟수를 보면 집권 초기에는 10회씩 참배했으나 점점 횟수가 줄어들어 지난해는 4회로 떨어졌다. [UPI뉴스]

 

 

참배 횟수를 연도별로 보면 △2012년 10회 △2013년 10회 △2014년 7회 △2015년 6회 △2016년 5회 △2017년 6회 △2018년 5회 △2019년 6회 △2020년 4회 △2021년 4회 등이다. 올해를 제외하면 지난 9년간 연평균 6.5회꼴이다.

 

그런데 집권 초기에는 연간 10회씩 참배했으나 점점 횟수가 줄어들어 2016년에는 절반인 5회로 줄었고, 지난해는 4회까지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해가 갈수록 김정은이 금수산궁전에 참배하는 횟수가 줄어든 가운데 그가 상체를 숙인 각도도 줄어든 셈이다.

 

다만 금수산태양궁전 '1호 행사' 사진을 전수조사 하면서 참배 인사예절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규칙이나 질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1호 행사'를 기념일 별로 분류하면 △김정일 생일 10회, 사망일 9회, 추대일 3회 △김일성 생일 9회, 사망일 8회 △신년 인사 9회 △당 창건 및 당대회 8회 △인민군 창건 및 정전협정 5회 △정권 수립일 2회 등이다.

 

▲ 기념일별로 보면 아버지 관련 기념일은 22회 참배한 반면에 할아버지 관련 기념일은 17회 참배했다. [UPI뉴스] 

 

 

아버지 관련 기념일은 22회 참배한 반면에 할아버지 관련 기념일은 17회 참배했다. 4대 명절 중의 하나인 광명성절은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한 반면에, 태양절은 한번 빠진 게 눈에 띈다.

 

'4대 명절'이나 신년 인사는 당∙정∙군 지휘성원들이 함께 참배하고, 군 관련 기념일은 군 지휘성원들만 참배했다. 관련 '1호 행사' 사진을 보면, 간혹 고령자는 상체를 덜 숙이지만 대개는 김정은처럼 '깍두기 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허리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수'란 별명이 붙었지만, 군인의 기본 인사예절은 거수경례이다.

 

북한도 지휘성원들이 '1호 행사'에서 군인사법에 따라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인데, 예외적으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4주기(15. 12. 17) 때는 제복을 입었음에도 탈모(脫帽)해 왼쪽 팔에 끼고 김정은처럼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를 했다. 현장 분위기에 따라 거수경례와 '깍두기 인사'를 혼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성불가침의 성지'인 금수산궁전의 '포토라인'을 기준으로 '1호 행사' 사진을 분석해 봐도 특별한 규칙이나 질서는 찾을 수 없었다.

 

▲ 집권 초기의 일부 '1호 행사' 사진을 보면 군 지휘성원들이 김정은과 동렬의 포토라인에 서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노동신문 캡처]

 


포토라인에 도열해 있거나 인사를 하는 '1호 사진'을 보면, 김정은이 선을 밟거나 살짝 뒤에 위치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에 비해 당∙정∙군 지휘성원들은 반걸음 정도 뒤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태양절 참배 때도 김정은과 리설주만 기준선에 살짝 닿을 정도로 위치해 있고, 측근 3인방은 반보 뒤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지휘성원들이 김정은보다 반보 뒤에 위치한 것도 아니다. 집권 초기의 일부 '1호 행사' 사진을 보면 군 지휘성원들이 김정은과 동렬의 포토라인에 서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하지만 김정은이 군 실세들을 숙청하고, 계급장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군기잡기'에 나선 뒤로는 김정은과 거리를 두고 반보나 한걸음 뒤에 위치한 모습이다.

 

더러는 눈치 없는(?) 박봉주 당중앙위 부위원장처럼 김정은도 넘지 않는 선을 밟고 선 경우(2019년 태양절)도 있다. 고령 탓이겠지만 선을 밟은 박봉주는 공교롭게도 상임위원에서 해임되었다.

 

최룡해 당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은 지난 10년간 김정은과 함께 참배한 횟수가 가장 많지만, 선을 밟지 않고 늘 김정은보다 반보 뒤에 위치해 있다.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것'이 그가 여전히 북한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장수하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 지난 4월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의 근위병들이 김일성∙김정일 입상에 헌화하기 위해 '포토라인' 기준선을 넘어 걷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김정은 집권 초기와 후기를 비교하면 김정은을 제외하곤 '선을 밟는 자'가 크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선을 넘는 녀석들'이 없지는 않다. 늘 환하게 웃고 있는 김일성∙김정일 채색 입상에 조화를 바치는 금수산태양궁전 근위병들이다.

U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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