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저희가 힘이 없는 거지, 희망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5-15 15:09:00
  • -
  • +
  • 인쇄
김금희 네 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인생의 여름에 '발생'한 희미한 사랑과 상처
기성세대의 무감한 폭력 속에서 찾는 출구
"이 여름 우리가 가장 무르고 환한 마음 갖기를"

근년 들어 여러 문학상에 자주 호명되며 많은 독자를 확보한 김금희(42)가 네 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창비)를 펴냈다. 사십대에 접어들어 집필한 단편 7편을 묶었다. 그는 자신의 사십대를 봄과 여름을 건너온 가을 초입쯤으로 상정한다. 이번 소설집은 그가 건너온 계절 중 생장 에너지가 강하고 그만큼 아픔도 깊게 각인된 여름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 이십대에 '발생'한 사랑과 상처를 현재 시점에서 다시 마주하며 펼쳐내는 양상이다. 

▲사십대에 접어들어 쓴 단편들을 모아 네 번째 소설집을 펴낸 김금희. 그는 "생물학적 나이야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다들 위안 삼아 말하지만 실제 맞이한 사십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면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으며 그것은 대부분 봄도 여름도 아닌, 가을에 가까운 마음이었다"고 썼다. [창비 제공] 


초두에 배치한 단편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은 표제 그대로 인생의 여름을 건너온 이의 아픈 회고담이다. 주미와 '장의사'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같은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십대 시절을 보낸 이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서로의 장래 희망을 환히 들여다보며 살게 마련인데 장의사만 유독 한 번도 '의사'라는 희망이 바뀌지 않아 '장의사'가 별명이었고, 실제로 의대 입학에도 성공했다. 재수에 이어 삼수를 하며 자학과 자조의 나날을 보내는 주미가 오랜만에 만난 장의사는 기실 의대에 적응하지 못해 힘든 날들을 견디고 있다. 

 

등교하는 대신 숨어서 아버지가 출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어머니는 모른 척한다. 눈치만 보는 집 바깥에서 장의사를 그나마 돕는 존재는 '김조교 형'. 이 문제적 캐릭터는 장의사 학교 생활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를 길들이며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듯하다. 그는 주미에게까지 촉수를 뻗쳐 짧은 연애 끝에 그녀로 하여금 아는 이 없는 낯선 동네 약국을 찾아가 임신 테스트기를 구하게 만든다. 김조교라는 인물의 이기적인 숨은 폭력성은 장의사 아버지 세대의 노골적인 '꼰대' 기질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표출 양상이 보다 교묘해졌을 따름이다. 기숙사에서 목을 매는 시도를 했다는 장의사의 말에 주미는 그의 손을 자신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장의사의 손을 꽉 움켜쥐던 나와, 독서실에 앉아 스스로를 해하면서 그 실제적인 손상감에 젖어들어가던 나, 가로수의 무수한 잎처럼 헤아릴 수 없이 나부끼는 감정들로 일산의 여름을 났던 나, 그 모두가 동일한 스물한 살의 나였다는 사실을 믿기가 힘들다. 마흔이 다 된 지금의 나는 손으로 꼽을 정도의 패턴으로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삶의 어느 모서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어쩌면 그런 감정의 분화는 오직 생장의 시절에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거느린 주미가 '장의사'가 끝내 세상을 등진 그 동네를 찾아 회상하는 이 대목은 애잔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과제의(通過祭儀)로만 젊은 시절의 들끓는 감정 분화를 받아들이기엔 회한이 깊다. '김조교'라는 인물은 '아름다움을 정확히 훼손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장의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김조교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그이처럼 교묘히 감추거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조차 무감한 폭력성이 젊은 생명을 억압해 질식하게 만든 셈이다. 


주미가 상담하는 학생의 말을 '희망이 없다'는 하소연으로 받아들이자 학생이 "저희가 힘이 없는 거지 희망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받아치는 대목이 나온다. 죽은 장의사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희망은 따로 있었겠지만 일관되게 아버지의 희망대로만 살아오다가, 자신의 희망을 관철할 '힘'을 얻지 못한 채 끝내 '여름'을 건너는 데 실패한 셈이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주미의 아이는 좋아하는 어린이집 친구에게 편지를 쓰겠다면서 '안녕'이라는 말을 쓰게 해 달라고 떼를 쓴다. 아이의 가슴속에선 다른 말들도 몽글거리겠지만 입에서 나오는 단어는 그저 '안녕' 뿐이다. 김금희는 아이의 '안녕'을 빌려 그 여름의 서사를 마무리한다.

 

"내게는 어떤 기회가 있었던 걸까. 그러니까 그건 내가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여름이었던 걸까. 죄의식이 밀려올 때마다 강하게 부정해왔지만 아이의 부탁으로 그 말을 적어보던 그 순간, 나는 아이가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녕,이라는 말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반복해서 물을 수 있고 그렇게 물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 비록 이제는 맞은편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에게라도 물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것이 일산의 여름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걸."

 

김금희에게 지난해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안겨준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도 인생의 여름에 '발생'했다가 소멸한 사랑을 돌아보며 부조리한 인간과 세상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이십대에 은경과 기오성은 한 노교수의 종택(宗宅)에서 처음 만나 여름을 보내며 족보 정리 작업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루한 족보 작업에서 빠져나와 활기 넘치는 인근 모란시장을 거닐면서 기오성과 은경 사이에 사랑이 발생하거니와, 활달하고 거침없는 교수의 손녀 강선이 끼어들면서 그 사랑은 소멸된다. 기오성이 강선과 어떤 교류를 했는지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그가 이후 보인 행태로 미루어보면 욕망을 감춘 이기적인 속성의 인물로 보인다. 

 

기오성은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참여정부 시절 '청년의 가짜 울음'을 조작해 선동작업을 하다가 대선과 총선을 거쳐 보수정당에 들어가 정치인의 길을 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달라는 청탁을 받고 은경이 그 시절의 일들을 다시 돌아보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강선은 어린시절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해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다시 미국 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지만 세월만 축내는 처지. 한국 아이들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자꾸 물었을 때 페퍼로니 피자를 좋아하는 강선은 '페퍼로니에서 왔다'고 말했다. 이라크 파병 당시 구호팀 일원으로 갔을 때 이라크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자 점령군의 일원인 나라에서 왔다는 말을 못하고 '페퍼로니에서 왔다'고 했다고, 기오성은 후일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말했다. 강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 말에 페퍼로니가 무어냐고 진행자가 묻자그는 "결국 아무 데서도 오지 않았다는 뜻"이었을 거라고 답했다. 은경은 말한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는 것. 그렇게 좌절을 좌절로 얘기할 수 있고 더 이상 부인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

 

▲김금희는 "내가 서 있는 지금은 8월의 끝자락쯤 될까, 혹은 후하게 쳐준다면 장마가 막 끝나갈 7월 중순쯤, 무엇이든 이제 나는 적어도 어떤 봄과 여름에 대해서는 말할 준비가 충분히 된 것 같다"고 '작가의 말'을 썼다. [창비 제공]

 

'초아'는 이기적인 세대의 무감한 행태를 따질 줄 아는 영악한 청년이지만 그 또한 기성세대의 탐욕이 키워내는 이그러진 세대가 될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깊이와 기울기'는 빈곤과 무기력 상태에서도 헤쳐나가야 할 지평을 조심스럽게 제공하는, 청년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작품들이다. 이 두 단편을 제외하곤 이 작품집에서 김금희가 공통으로 '발생'시킨 사랑은 대체로 희미하고 쓸쓸하다. 주미와 장의사, 은경과 기오성이 그러한 것처럼 '마지막 이기성'의 이기성과 유키코, '크리스마스에는'의 나와 현우, '기괴의 탄생'의 선생님과 대학원생의 스치는 사랑들이 대체로 그렇다. 그 사랑들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돌아보거나 그 대상과 재회하여 그 시절 감정과 관계의 실체를 직시하는 구조가 거듭되는 서사들이다. 

김금희는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이별한 누군가와 재회하는 내용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상실은 내가 처음 글을 쓰려고 했을 때부터 나를 붙들고 있던 문제이지만 다시 만나는 것이라니, 그것은 얼핏 상처의 치유나 관계의 회복처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손의 확인에 가까워 보였다"고 말한다. 그 행위는 "뚜벅뚜벅 걸어가 장막을 확 젖혀 어느 무대를 매섭게 쏘아보는 듯한, 하지만 거기에서도 어떤 환하고 무른 기억들이 쏟아져나와 그것이 지닌 에너지에 문득 손을 떨구고 마는" 것이라고. 이어지는 페퍼로니 주민의 말.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그리고 아무도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선택했지. 그렇게 해서 어떤 인생의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가능한 무른 마음을 갖는 여름이길 빈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2021. 7. 25. 0시 기준
188848
2073
166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