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너는 울 곳이 필요했구나"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5-21 09: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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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소설집 '네 눈물을 믿지 마' 펴낸 김이정
황폐한 내면 위무할 공간 찾아 떠도는 인물들
베트남 파병 한국군 참혹한 가해 현장도 생생
"자신을 잃은 삶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것"

울음도 사치스러울 때가 있다. 억장이 너무 막힐 때는 울음의 길도 막혀버린다. 김이정이 10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소설집 '네 눈물을 믿지 마'(강)에는 울 곳을 찾아 떠나는 인물들이 모여 있다. 울기에 적당한 공간은 한결같이 그들의 내면처럼 황폐한 곳이었다. 따스한 위무의 공간이 아니라, 폭격과 학살과 그을림의 현장을 찾아 굳이 멀리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10년 만에 세 번째 단편 모음집을 펴낸 소설가 김이정. 황폐한 공간을 찾아다니는 소설 속 인물처럼 실제로 파산을 체험한 그는 "떠나야 비로소 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빚만 나눠 가진 채 이혼을 한 여성 작가가 있다. 처음에는 게으르기만 했던 삶에 대한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푼돈이라도 되는 일을 찾아 부지런히 일했다. 소설을 쓰는 건 언감생심, 엄마와 아이의 생활비를 버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매일 도서관에 나가 많지 않은 원고료가 책정된 잡문을 썼는데 그건 그나마 나은 것이었다. 때론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의 자서전을 쓰며 무례한 대접을 받거나 막장 드라마 대본을 급히 소설로 재구성하는 일을 비롯해 에세이집을 내려는 사람들의 대필까지 맡았다. 연체고지서는 쌓여가고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그녀는 어느 날 도서관으로 가는 마을버스 룸미러에 비친 데드마스크 같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충동적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녀가 간 곳은 북인도의 갠지스 강변이었다. 그곳에서 죽은 자들을 태우는 모습을 보고 강가에 꽃불을 흘려보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콜카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벌떼처럼 몰려오는 호객꾼들을 물리치고 프리페이드(prepaid)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는 목적지 인근에 그녀를 내려놓고 가버려 복잡한 길에서 헤매야 했다. 그녀는 갠지스 강에서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내 생은 미리 받은 선불을 다 써버렸나 봐. 프리페이드 택시처럼 나를 아주 낯선 곳에 내려놓고 가버렸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강으로 소리 없이 나아가는 보트 위에서 꽃불을 강물에 띄우며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난 말이다. 내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게 도덕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요즘 난 내가 짐승처럼 느껴져. 생존 본능만 남은 짐승 말이야. …자신을 잃은 삶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한지도 몰라.'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일곱 개 중 서두에 배치한 '프리페이드 라이프'의 이 여성은 삶의 낭떠러지에 당도해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릴 배짱을 지닌, 그나마 아직은 울기 직전의 용기는 남아 있는 셈이다. '믿지 마, 네 눈물은 누군가의 투신인지도 몰라'의 남자는 철저하게 막힌 공간에 갇힌 처지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아내가 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버렸다. 파산 후 아내와 위장 이혼을 한 채 다섯 번째 옮긴 고시원에서 살다가 집에 들른 길이었다. 해머로 번호키를 내리치고 가까스로 집 안에 들어갔지만 어디에도 자신을 위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박탈당한 유령이었다.

 

'나 좀 구해줘! 무전기를 통해 나오는 난파선 선장의 목소리처럼 다급하다. 나 좀 구해달라고! 등에 진 배낭에 온몸이 깔리기라도 한 듯 나는 비명을 지른다. 텔레비전에선 주말 드라마의 재방송이 막 시작되었다.'

 

'노 파사란'의 여자가 탈출한 곳은 스페인 게르니카였다. 스페인 내전 때 독일의 극렬한 공습으로 파괴된 그곳을 피카소가 그림으로 표현해 유명한 곳이다. 여자는 '게르니카' 그림 속에서 비명을 듣고 공명한 내면이 흔들리는 걸 감지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게르니카를 떠나본 적 없는 '레이레'의 엄마는 치매에 걸린 지 4년째. 히틀러의 폭격으로 열한 명 가족 중 모두 죽고 여덟 살 난 그녀만 살아남았다. 그녀는 폭죽 터지는 소리에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 몸을 떤다. '노 파사란', 자신들을 적들이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그 노래는 그들에게 슬픔의 노래가 되었다. 그곳까지 도망가거나 혹은 탈출한 그 여자도 그곳에서 치매 걸린 노파처럼 폭탄 터지는 환청을 듣는다.


'아니 그것은 쓰러지기 직전 내게 전화를 걸어 내지른 그의 비명이기도 했다. 가진 건 바닥이 난 지 오래지만 여기저기서 끌어온 빚으로 정신없이 틀어막던 사업이 손수건 한 장 남지 않았던 그날 밤, 그는 전화를 걸어왔다.…나, 무서워. 그가 끝내 울먹이며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밤, 내게 오기 위해 머물던 고시원을 나서던 그는 휴게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네 눈물...' 속 남자의 이야기가 이 단편으로 이어졌다. '함께 있었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의 곁에 있었다면.. 결국 폭탄과 총알이 쏟아질 걸 알면서도 노 파사란, 두려움의 노래라도 함께 불렀더라면...' 회한에 사로잡혀 여자는 가슴을 친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치매 엄마의 딸 레이레가 커다란 두 손으로 여자의 등을 쓸어내리며 곁에서 말한다. '너는 울 곳이 필요했구나.'

'죄 없는 사람들의 도시'에서 리스본으로 탈출한 여자는 그곳에서도 하필 18세기 대지진이 덮쳤던 파괴 현장을 찾아다닌다. 런던으로 탈출한 여자는 다트무어의 황량한 공간을 찾고, 자신을 닮은 '압생트를 좋아하는 여자'와 그을린 내면을 확인한다. 게르니카의 폭격은 누군가에게는 파산으로, 대지진으로, 화재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 계속되는 셈이다. 어떤 집단에게는 학살의 기억으로도 이어진다.

 

'1968년 음력 1월 24일 학살당한 135명의 동포를 기리다. 30가구 중에 135명이 죽었다. 피가 이 지역을 물들이고, 모래와 뼈가 뒤엉켜 섞이고… 과거의 전장이었던 이곳에 이제 고통은 줄어들고, 한국인들은 다시 이곳에 찾아와 과거의 한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그리하여 용서의 바탕 위에 이 비석을 세운다.'

 

베트남 파병 한국군에게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비석 뒷면에 새겨진 문구다. 30년 만에 찾아와 3만 달러를 건네며 위령비를 세우라고 한 한국 퇴역 군인들은 이 비문을 고치라고 했다고, 김이정은 '하미 연꽃'에서 전한다. 하미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세웠다면 위령비 아닌 증오비를 세웠을 거라며 한 자도 고칠 수 없다고 거부했다. 베트남 정부는 '미래를 향해 과거를 닫자'고 주민들을 압박했고, 주민들은 비문을 없애는 것은 새로운 학살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주민들은 비문을 없애는 대신 연꽃을 그려 비문을 덮기로 했다. 그 연꽃은 절대로 예쁘게 그려서는 안 된다는 단서가 붙었다. 

 

참혹한 현장에 가해자로 참여했던 한국 병사 하나는 귀국해 내내 정신병원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그의 딸이 세월이 흘러 하미 마을을 찾는다. 퐁니에서는 총상으로 터진 옆구리를 끌어안고 기어서 겨우 살아남았던 여자를 만난다. 그녀의 집에 들렀다가 추모비가 있는 숲으로 가면서 그녀와 서로 허리에 팔을 감고 걸었다. '그들은 동갑이란 걸 알고 어느새 친구가 돼 있었다. 좁은 논길로 접어들기 전이었다. 그녀의 허리 한곳으로 내 손이 툭, 미끄러졌다. 무심코 미끄러진 손이 그녀의 움푹 파인 옆구리에 닿았다. 길을 걷다가 파인 웅덩이에 발이 빠지듯 느닷없이 미끄러진 손바닥에 닿은 깊이 파인 상처의 골. …불에 달군 쇳덩이라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뗄 수도 없어 그녀의 상처를 껴안은 채 이인삼각 경기처럼 걷는 논길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날도 불었을 무심한 바람이.'

 

'이인삼각 경기'란 아픔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다. 김이정이 실제로 '하미'와 '퐁니'를 다녀온 뒤 이 단편들을 쓸 때만 해도 최소한의 긍정적인 발언을 덧붙일 수 없었다고 했다. 저런 표현이나마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 덧붙이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참혹한 기억을 되살리는 현장이 아니더라도 김이정의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떠난 곳은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다. 왜 그의 인물들은 황폐한 곳을 찾아, 그것도 충동적으로 떠나는가.

 

"떠나야 비로소 울음이 나오더군요. 울면서 많이 다녔어요.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 탈출이라고 봐야겠죠. 실제로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나 취재를 위해 갔지만, 소설 속 자아들은 내압이 차올라 폭발하기 전에 도망간 겁니다. 겨우 탈출한 곳이 자신의 내면과 비슷한 황폐한 곳인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위로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더라구요."

▲김이정은 "잘 우는 것만큼 소설에서 치유나 회복, 대안 같은 걸 제시하는 건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여기저기 떠나고 헤매는 이들이 찾을 궁극의 구원은 어떤 모습일까. 소설 속 인물들처럼 실제로 11년 동안 파산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김이정은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질문이었고, 쉽게 답을 내는 걸 두려워한다"면서 "질문까지가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가 힘들게 꺼낸 답은 소설집 말미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신을 향해 있던 시선이 조금씩 외부를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외부라는 게 대부분 붕괴되고 쓰러진 폐허와 폭력과 재난의 흔적들이지만, 아니 그런 까닭에 더 일체감을 느끼는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세상으로 향한 걸음을 내딛는 기분이다. 어느 곳이 더 바람직한 문학의 영토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니 이런 이분법이야말로 문학을 협소한 곳에 가두는 굴레일 것이다. 다만 그곳이 어디든, 인간이 있는 곳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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