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노동'에 스러진 가수의 꿈…홈플러스 배송기사 '하늘로'

김대한 / 기사승인 : 2021-05-27 16: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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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싱어게인' 출연이 꿈이던 배송기사
"생일날 '열흘 꼬박 일했더니 힘들다' 토로"
홈플러스 배송기사 故 최 모(47) 씨는 출근을 준비하다 뇌사상태에 빠졌다. 2주 만에 생을 마감했다. 기자가 장례식장에 간 시간은 26일 오후 7시. 그의 장례식장은 그곳에서 가장 좁고, 썰렁했다. 문상객으로 가장 붐빌 시간이지만, 다른 배송 기사들 모두 3차 배송을 하며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녀 없이 단란하게 살던 가족. 장모는 비록 사위(최 씨)가 돈은 잘 못 벌어도 자신의 딸을 아껴주어 너무 좋았다고 회상한다. 고요하고 비참한 분위기 속 어렵게 유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홈플러스 배송기사 故 최 씨의 빈소. [김대한 기자]


"가수가 꿈이었던 착한 '바보'"


부인과 장모가 기억하는 최 씨는 노래를 잘했다. 양옆에서 최 씨를 부추겼고, 최 씨 역시 JTBC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출연이 너무나 고팠다.

부인은 "노래를 정말 잘해서 가수를 꿈꾸던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었다"며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냈으면 영상이라도 남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마트 배송기사는 정해진 시간 외에 쉬려면 용차비를 내야 한다. 하루에 최소 20만 원 이상을 내야 쉴 수 있다. 그마저도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 역시 용차비가 막막해 지원해볼 시간도 없었다.

'가수지망생' 최 씨는 배송기사들 사이에서 책임감 넘치는 리더기도 했다. 마트 배송기사 20명 중 막내 다음으로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지만, 동료들의 일도 선뜻 나서 해결해줬다.

부인은 "새벽에 동료 기사로부터 전화가 와도 벌떡 일어나 받던 사람이다. 그만큼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며 "나는 이름도 모르는 기사님이 실수해서 내가 대신 뭐 했다 뭐 했다 등 툴툴거리면서도 모든 동료들의 신세 한탄을 다 들어주던 모습이 선하다"고 울먹였다.

그의 책임감은 위기에서도 빛이 났다. 그는 친구의 사기로 집을 날렸지만, 파산 신고도 안 하고 2년을 꼬박 일해 모든 빚을 청산했다.

부인은 "나는 착해빠진 사람이랑, 바보랑 산다고 말하고 다녔다. 친구한테 사기를 당해서 집도 날렸다. 그래도 끝까지 남편이 우겨서 2년 만에 돈을 다 갚았다. 바보 같이 우직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평생 힘들다고 한 적 없었는데 생일날 "열흘을 꼬박 일해 힘들다"

최 씨는 지난 11일 오전 7시경 힘없이 소파에 앉았다. '몸이 이상하다'고 부인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머리를 감싸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부인이 119를 부르려 하자 "창피하다"며 말렸다. 그렇게 부인이 물이라도 챙기러 간 사이,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곤 저승의 문턱을 밟고 말았다.


장모가 기억하는 첫 통화는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장모는 "딸로부터 '오빠가 숨을 안 쉰다'고 8시 35분에 전화를 받았다. 구급차가 다행히 5분 만에 왔다기에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었다"고 말했다.

이후 "병원에서는 뇌동맥이 터져서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고 이게 무슨 일인지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최 씨는 평소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부인만 바라보는 착한 사위였다. 장모는 "우리 사위가 5월 22일이 생일이다. 근데 쉬는 날이 일정치 않아 9일 날 생일파티를 했다. 이날 처음으로 '열흘 동안 일하니까 힘들다'고 말했다. 그 뒤로 이렇게 갈 줄은…"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 씨가 열흘 동안 일을 하면서 쉬지 못한 이유는 지난 3월부터 홈플러스의 배송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부터 하루 20대가 배송하던 지역을 16대가 모두 총괄해 운영했다. 자연히 한 명의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 배송 권역과 물량이 넓어졌다. 20명이 일하던 물량과 권역을 16명 처리하게 됐다. 4명의 여유가 생겨 월 휴일이 조금 늘었지만, 쉬는 것에 대한 선택권은 없다. 무작위로 주사위를 굴려 정해진 날에만 가능하다.

20명이 하던 것을 16명이 맡게 됐으니, 업무강도는 당연히 세졌다. 모르는 구역까지 책임져야 하고 배송 물량도 더 늘었다. 최 씨도 그런 환경에서 일하다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

"보상금 없어…줄곧 '회의'만"

최 씨의 사망과 관련해 홈플러스와 홈플러스 하청업체인 이편한물류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이편한물류 측은 2주가 넘도록 내부 회의 중이다. 본사 홈플러스 측은 보상금은 어렵고, 정직원으로 채용해주겠다는 말을 건넸다.

부인은 "대체 그 회의는 언제 끝나는지 모르겠다. 보상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이편한물류 쪽이다. 이후 여러 차례 만났지만, 내부 회의를 해야 한다는 말 만 반복한다"고 말했다.

이어 "홈플러스 측은 그동안 이편한물류 쪽에서 전달받기로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우리에게 해명했다. 보상은 힘들 것 같고 정직원을 시켜주겠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유족 측은 이를 거절했다.

최 씨의 부인과 장모는 끝까지 힘을 내 볼 생각이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못 하고 지냈다. 현재 이곳저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고 있고,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내가 몸이 안 좋아 빨리 죽을 것 같아서 내 걱정만 하던 남편이다. '내가 먼저 죽으면 새장가 가지말아라'고 농담도 주고 받았는데…" 부인은 "그 사람은 내 걱정만 하다 억울하게 세상을 떴다"며 눈물을 훔쳤다.

UPI뉴스 / 김대한 기자 kimkorea@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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