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정유정 "행복은 뺄셈이 아니라 덧셈이다"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6-11 11: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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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완전한 행복' 펴낸 소설가 정유정
자아도취형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의 행복 찾기
얼어붙은 바이칼 호에서 들여다본 인간의 심연
"복잡한 인간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이 내 소설"

사람이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고, 자신의 행복만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전락시킨다면 그 사람을 어찌할까. 소설가 정유정이 펴낸 신작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은 운명이 만들어낸 그 괴물의 실체를 들여다보며 이 시대, 특히 한국사회에 자욱한 병적인 이기심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정유정 소설은 이미 영미권은 물론 유럽과 중국 일본 브라질 등 해외 20여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돼 독일 유력 주간지 '차이트'에서는 '올해의 추리소설'로, 미국 NBC에서는 '올 여름 읽을 책 후보'로 추천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 번 들추면 끝을 보지 않고서는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정유정 스타일의 긴박한 문체와 정밀한 서사는 이번에도 여일하다.

▲신작을 펴낸 소설가 정유정. 그는 "인간은 모순된 감정을 한꺼번에 품고 있는 슬픈 존재"라며 "그러한 모순은 저주이자 축복"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나는 참 운이 없어. …아무리 잘해줘도 사람들은 나를 배신해. 심지어 아빠까지도.' 운이 없다고 되뇌는 '신유나'는 신념이 확고하다. 자신의 잘못은 있을 수 없고, 모든 불행은 다른 이들 탓이라는 신념. 유나가 자신의 행복을 찾는 길은 그러므로 방해 요소들을 미리 제거하는 방법밖에 다른 건 생각할 수 없다. 자신이 낳은 여섯 살 난 어린 딸 '지유'도 가스라이팅 대상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사람 속을 겉으로는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오히려 매혹당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남자 '차은호'가 대표적인 희생자다. 한겨울 바이칼호에 갔다가 신유나를 만났고, 그녀가 높은 음으로 깔깔 웃는 소리가 묘하게 아랫배를 간질이며 감각을 자극해 포획된 경우다.

 

신유나와 재혼한 그는 여러 불행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그녀를 믿으려 했다. 그가 신유나에게 청혼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당연한 주문. '행복하게 사는 거'에 동의해야 한다고. 그때 이상한 낌새를 느꼈어야 했다. 은호는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니냐고 말했지만 유나는 부정한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 하나를 막 제거하고 바이칼호로 떠나온 유나는 은호를 그곳에서 만나기 전까지 이미 뺄셈에 익숙해진 터였다. 정유정은 "고백건대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면서 "아주 야금야금 길이 들었고 관계에서 벗어났을 땐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고 책 뒤에 썼다. 

 

'자아도취형 인간을 나르시시스트라 부르지만,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의미가 좀 다르다. 통념적인 자기애나 자존감과도 거리가 있다. 덧붙이자면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는 나르시시스트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보다 흔하다는 점에서 두렵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자아는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며, 매우 매혹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다. 그들에게 매혹된 이는 '가스라이팅'에 의해 길들여지고, 조종되고, 황폐화된다. 때로는 삶이 통째로 흔들린다.'

 

-병적인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가스라이팅'(타인을 길들여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함으로써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 사례는 일상에 다양하게 스며 있는 것 같다.

"신유나가 아이에게 행하는 태도가 전형적인 경우다. 남편에게는 완전히 먹히지는 않았지만 남편도 자신의 애가 죽고 난 뒤에도 끝까지 여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 있다. 마음이 많이 아팠던 캐릭터다. 신유나 같은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자아가 거의 없는 사람이다. 자존심은 있지만 자아가 없어서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 유아기 때 부모가 잘 형성시켜줘야 하는데, 부모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키우면 부모를 나를 돌봐주는 자아라고 생각한다. 다 자라서 어른이 될 때까지 타인이 나를 돌봐주는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계가 없다. 그래서 타인을 조종해서 내 이득을 취하게 된다. 누구나 자기애적 요소는 지니고 있고, 또 있어야 건강한 자존심을 형성하는 데 필요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악성 나르시시스트가 돼 폭주하게 된다. 이성이 없어지고 자기 신념이 옳다고 계속 강화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신재인은 스스로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빠진 경우다."



신재인은 동생 유나로부터 어린시절부터 극심한 고통을 당해온 캐릭터다. 부모 사정으로 언니 대신 시골 조부모 집에 따로 떨어져 커야 했던 동생 유나는 그 상황을 전부 언니 탓으로 돌렸다. 성장기는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내내 언니를 '도둑년'이라 부르며 괴롭혔다. 재인은 동생에게 당하는 것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착한 딸'이라고 자위하며 무기력하게 살아왔다. 죽음의 고비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새삼스러운 진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유나에게 당하고만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당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하고 물러서야 아버지의 착한 딸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력을 다해 맞대응하는 순간 아버지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믿는 딸이 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이 신유나를 괴물로 만들었는가.

"양육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를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고 세상의 중심이라고 키우면 안 된다. 유일무이한 존재인 건 맞지만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자신들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다가 홀로코스트를 몰고 온 독일의 경우를 떠올려보라.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집단 나르시시즘이 초래한 비극이다. 그렇긴 하지만 신유나의 경우는 운명의 책임이 크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본질적인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공통으로 깔려 있는데 이번 소설에서는 신재인에게 그런 역할을 맡긴 것 같다. 일관되게 자아의 독립, 자유를 추구해온 배경은?

"인간에 대한 사랑도, 책임감도 다 좋지만 한 번뿐인 인생인데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진정한 자유의지다. 나는 20대에 자유의지로 살지 못했다. 엄마 없는 동생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살았는데 그게 항상 맺혀 있다. 지금 젊은이들도 그런 상황에 처한 경우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오면 도망가라고 그런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독립을 시켜야지 볼모로 잡고 있으면 안 된다. 신재인에게 나 자신이 많이 투사돼 있다."

 

-'종의 기원'에서는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을, 이번 작품에서는 병적인 나르시시스트를 그렸다. 극단적인 어두운 내면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우리 사회를 뒤집어 놓는 사건은 사실 극단적인 사람들이 만든 것들이다. 나에게 소설은 기본적으로 A와 B 사이 극단을 오가는 진자운동이지, 가운데 있는 평지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평지 이야기를 비범하게 쓰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아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인간들이 나의 이야기다.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쫓기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최선을 두고 최악으로 가는지 관심이 많다. 낭떠러지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달려가 떨어져버린다. 나도 그런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과오들에서 비롯된 거다.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최소한 내 인생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인생 자체가 롤러코스트라서 재미있다. 따분한 거는 질색이다." 

▲신작을 집필하기 전에 꼼꼼한 현장 취재와 치밀한 공부를 앞세우는 정유정은 이번 소설을 위해서는 시베리아를 횡단해 얼어붙은 바이칼 호까지 다녀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정유정은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로 이어지는 하드보일드 장편을 연달아 쓴 뒤 기진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왔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사이코패스 소설 '종의 기원' 집필을 앞두고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바이칼 호에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다녀왔다.

 
-시베리아를 횡단해 바이칼 호까지 간 이유는?

"소설에서 중요한 공간인 '반달늪'은 온전한 원을 그리지 못하는 '반달' 같은 신유나를 상징한다.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지만 '풀문'(full moon)이 될 수 없는 인물이다. 세상에 완전한 행복이 어디 있나. 불운이나 결핍도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요소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행복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거다. 완전한 인간이 없는 것처럼 완벽하게 행복한 인생도 없다. 유나가 추구하는 행복은 영원히 얻을 수 없는 '하프문'(half-moon)인 것이다. 유나의 심연인 '반달늪'에 대응할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깊다는 호수를 밑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어 있을 때 가보고 싶었다."

 

-대체 행복이 무어라고, 그걸 찾고 지키겠다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죽이는 병든 모습이 처절하고 안타깝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슬픈 존재인가.

"그렇다. 사랑과 미움 같은 모든 감정을 한 몸에 가지고 한꺼번에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에서 신유나의 남편 차은호가 그런 비감한 존재다. 자기 아내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품고 있다.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던 남자이고, 사랑했기에 아내의 실체를 알기가 두렵고, 자기 아이를 죽였다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끝까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인간이 이렇게 슬프고 모순된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 슬프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 않나. 그동안 운명의 폭력성을 다뤄왔는데, '7년의 밤'의 오영재 같은 나쁜 놈도 비애를 느낀다. 사실 이런 모순은 슬픔이자 축복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이 거기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동시에 그걸 품고 있으니 삶이 슬프기도 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존경받던 인물이 뒤에 가서 보면 이상한 짓도 하지 않나. 이 복잡한 인간 존재에 대해 나는 물음표가 너무 많다. 철학자가 아니니 다 규명할 순 없겠지만,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 것 같다."

▲정유정은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면서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번 소설에서 가장 안쓰러운 인물 중 하나가 신유나의 여섯 살 난 딸 '지유'다. 어린 아이가 끔찍한 장면들을 비몽사몽간에 목도하고, 엄마 신유나는 그 아이를 철저하게 자신의 인형처럼 길들이려 한다. 자유를 훼손당한, '불구의 자유'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이름도 '지유'인가. 정유정은 그동안 해외에 번역된 작품들의 인물들 이름이 이상하게 번역돼 특히 여성 인물들 이름은 영어로 써도 왜곡이 없는 작명을 단순히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작품은 출간도 되기 전 에이전시에서 서둘러 번역을 위해 원고를 달라고 했고, 영화 판권도 처음부터 할리우드에 내놓았다.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휩쓴 가상 도시를 다룬 전작 '28'은 드라마 계약을 끝내고 내후년쯤 선보이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다. 이번 작품에 이어 인간이 애완동물로 전락한 미래를 다룬 가제 '신들의 세계'를 포함한, 이른바 '욕망의 3부작'을 향해 나아갈 예정이다.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정유정이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행복조차 또 하나의 욕망으로 변질된 세태에서 소설 속 '비감한' 사나이 차은호는 아내에게 꿈속에서 묻는다.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신유나의 말을 뒤집어 보면, 짧은 순간이라도 행복을 느끼는 '어리석은' 이들은 운이 참 좋은 사람들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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