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이준석은 '정글 보수주의자'인가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6-14 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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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보수주의자라기보다 전형적 부국강병론자
진보가 분노해야 하는 건 진보정권의 아집과 무능
지난 11일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역풍의 시간: 이준석 현상, 제대로 보고 있는가', 다음날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가 쓴 '역차별을 주장하라…이준석이 트럼프와 공유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잘 읽었다.

두 칼럼의 선의엔 공감하면서도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두 분이 공통적으로 인용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책 <공정한 경쟁>의 한 대목을 다시 음미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모두가 자유로운 세상은 정글이죠. 또한 정글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약육강식입니다. 강자가 다 먹는 세상이죠. 미국은 이런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요. …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보는 것이죠. …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시 도약해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인용을 한 이 교수는 "이런 정글 보수주의자가 보수혁신의 아이콘, 세대교체의 기수란 말인가"라면서 "이준석의 정체란 혹시 대한민국을 진짜 '헬조선'으로 만들려는 자가 아닐지 묻게 된다"고 했다. 정 기자는 "트럼프와 이준석이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그 논리의 승자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그런 현실에서 뒤처지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트럼프와 이준석을 지지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두 분 모두 좀 비약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질문에 답하는 대담집 형식으로 구성된 것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앞의 여섯 문장은 '미국 사회에서의 경쟁의 의미'에 대해 말해달라는 대담자의 요청에 따라 나온 것이다.

정확한 묘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대표가 곧장 그런 미국사회를 그대로 따라가자고 주장하진 않았다. 마지막 문장은 "미국식 자유의 가치가 우리 실정에 적합하다고 보느냐"는 다른 질문에 답한 것으로, 생략된 부분을 포함해 단락 전체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제도를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건강보험 같은 경우는 박정희 정권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지만 이미 충분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공적 보조로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시 도약해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가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건 분명하지만, '정글 보수주의자'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부국강병론자'로 보는 게 더 옳을 것 같다. 이 책엔 자유의 가치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낙오자에 대한 고민, 계층상승의 사다리 구축, 기본소득제 도입, 실업급여제 확대, 고교 무상·의무교육, 국립지방대 지원 강화, 보육의 국가책임 등 '정글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먼 주장들이 꽤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국강병론은 진보 지식계에선 전형적인 보수 담론으로 비판받는 것이지만, 보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진보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일반 국민들까지 과연 그런 건지는 의문이다.

'이준석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몰라서 잘못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보는 건 진보 진영이 빠져 있는 독선과 오만이 아닐까? '이준석 현상'은 진보적으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던 문재인 정권의 실패라는 토양에서 핀 꽃(또는 독버섯)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진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반성과 성찰이 아닐까?

진보 논객들이 '이준석 현상' 비판으로 치우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곽정수 한겨레 논설위원이 지난 9일자 칼럼에서 '진보의 반성과 성찰'을 요청하고 나선 게 눈물겨울 정도로 반갑다. 그는 "한-미 FTA, 신공항, 고속철도는 모두 한국 사회·경제에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인 일들이다. 진보진영이 이들 사안에 모두 부정적 태도를 취한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 4년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개혁진보 성향 소장파 학자를 인터뷰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정책이 '시장 수용성'을 무시하다가 실패했다는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학자들은 지난 4년간 뭐 했냐는 질문을 했다. 순간 이 질문은 학자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모두에게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머리를 내리쳤다."

이 교수는 이 대표를 '극우 성향의 시장주의자'라고 했지만, 진보 지식인이 더 분노해야 하는 건 '시장 수용성'이라는 개념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던 진보정권의 아집과 무능이 아닐까? 이미 충분히 '헬조선'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 대표로 인해 '진짜 헬조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는 건 이 대표와 보수 세력에 대한 과대평가인 동시에 어느덧 진보의 특기가 된 내로남불일 수 있다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때론 영화 대사 한마디에서도 진보가 나아가야 할 길의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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