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왜 강성 지지층은 자기 정당을 죽이고야 마는가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6-30 16: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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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출간한 <보수를 말하다: 한국 보수를 향한 바깥의 시선>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정운천 의원은 "보수가 배울 점이 참 많다"며 당 의원 102명 모두에게 일독을 권하며 이 책을 선물했다. 하태경 의원은 "오전에 책을 펴자 일사천리로 다 읽었다"며 "한마디 독후감 하자면 보수 집권전략이다. 정권교체 바라는 모든 분의 필독서 강추"라고 했다. 이 책을 읽은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는 버릇이 있는데, 내가 가장 먼저 밑줄을 그은 건 다음 대목이었다. "보수에겐 자신을 객관화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보수는 여전히 저만의 좁은 세계에 갇혀 자기들의 모습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모른다. 이 사회 주류였을 때, 그리하여 자기들의 생각이 곧 사회의 지배적 생각이었을 때는 굳이 남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좋은 시절은 이미 오래전 지났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의 압승, 그리고 6·11 전당대회에서 정점을 찍은 '이준석 돌풍'은 국민의힘에 다시 '좋은 시절'을 가져올 가능성을 크게 높여주었다. 일시적일망정 국민의힘 지지율이 39.7%를 기록하면서 29.4%인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를 10% 포인트 넘게 벌리기도 했으니 말이다.(6월 셋째주 리얼미터 조사)

그래서 <보수를 말하다>라는 책의 가치는 사라졌을까? 그럴 리 없다. 수시로 정치판을 뒤흔드는 한국정치의 역동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민의힘이 안고 있는 근본 문제는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이 그간의 '스스로 망가지기'를 중단하고 정신 차릴 가능성도 있잖은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한 건 여야 공통의 문제인 '강성 지지층의 저주'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이른바 '1% 법칙'의 문제다. 어느 분야에서건 꼭 1%가 아니더라도 극소수의 사람들이 전체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걸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정치적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들이기에 정치에 적극 참여한다.

종교적 열정으로 뭉친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바치는 '순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순수성이라는 '도덕적 면허'를 앞세워 정치적 반대파에게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호전적 공격성을 보인다. 특히 내부의 비판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배신'과 '변절'을 범했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집단에서건 이런 강경파는 1% 안팎의 극소수임에도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뜨거운 정열로 똘똘 뭉친 그들은 참여를 하지 않는 사람들과 대비해 '1당 100'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강준만, <독선사회>)

진 전 교수는 "민주당의 강성 지지자들처럼 보수진영 강경 지지자들도 감정이입 능력이 부족하다. 타인이란 곧 '적'이기에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서 외려 큰 기쁨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들의 정의가 승리한 증거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으며,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자기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서로 격려해가면서 그런 성전(聖戰)의 결의를 다지기에 바쁘다.

약효가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국민의힘은 '이준석 돌풍' 덕분에 강성 지지자들을 주변화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은 여전히 강성 지지자들이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지도부와 의원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는 건 이미 공개된 비밀이 아닌가.

4·7 재·보선 참패 후 초선의원들이 "이대론 안된다"며 '쇄신'을 부르짖고 나섰지만, 이들을 단숨에 잠재운 것도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폭탄 공세가 아니었던가. 이로 인해 합리적 지지층에서 이탈자들이 나오고 있지만, 성전은 원래 현실 세계의 승패엔 개의치 않는 법이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진 전 교수는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수가 품어야 한다. 자고로 싸움에서 적은 적을수록 유리하다. 애먼 사람을 적으로 돌릴 게 아니라 적까지 친구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에게 그런 역량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사실 이 말은 "차이를 품어 통합하기보다 차이를 섬멸해 사회를 동질화하려"고 애쓰는 진보에게 주는 조언으로 이해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민주당은 스스로 망가지고 있는 걸 개의치 않은 채 경쟁 세력들을 '악마화' 하면서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네거티브 공세로 판을 뒤집어 보겠다는 야망에 불타고 있다. 이를 '강성 지지층의 저주'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1년 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앞으로 보수라는 말을 사용하지 마라"고 했는데, 이러다가 "앞으로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마라"는 말이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보'라는 개념을 사랑하는 이들이 총궐기해서 민주당의 어리석음을 교정해줄 수도 있겠건만, 이들에겐 1% 강성파의 신앙과 열정이 없는 걸 어이하랴.

지금까지 강성 지지층을 비판해왔지만, 이를 각 개인에 대한 비판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각 개인은 더할 나위 없이 선하고 정의로울망정, 문제는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형성하는 집단의 속성에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회심리학에서 이를 설명해주는 게 바로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이다.

집단극화는 어떤 문제에 관한 집단 토의에 참가한 후에 구성원들은 토의 전보다 더 강경하거나 모험적인 의사결정들을 지지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국 시카고대 법학 교수 캐스 선스타인을 비롯한 연구집단이 동성결혼, 차별 철폐 조치, 지구 온난화라는 세가지 논쟁적인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 콜로라도 시민 63명을 모아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같은 견해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공유하면 할수록, 그들의 견해는 더욱 더 극단화된다는 걸 보여 주었다.

이러한 집단극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집단토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구성원들이 애초에 가진 입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이유들보다도 찬성하는 이유들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집단토의는 적극적으로 스스로 개입하도록 고무시키며,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애초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때문에 보다 더 극단적 의견들이 나오게 된다.

여기에 '편향동화(biased assimilation)'가 가세해 대화와 토론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편향동화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생각과 같은 주장은 현명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결국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 관련, 선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어도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과 어긋나는 정보들이 수두룩함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정보들을 단순한 선전물로 간주해 버린다. 중대한 문제일수록 기존에 갖고 있는 애착, 두려움, 판단, 선호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과 배치되는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기존 입장에 대한 확신은 그대로 유지된다. 특히 극단주의자들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 그 신념에 반대되는 증거나 정보를 접하더라도 기존 신념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강준만, <감정독재>)

바로 그런 이치로 인해 강성 지지층은 '대중의 바다'라고 하는 현실과 벽을 쌓은 채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을 죽이고야 만다. 다시 살아나는 건 반대편 정당의 강성 지지층이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 정당을 죽일 때이다. 이는 그간의 한국 정치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렇듯 거대 정당들은 서로 번갈아가면서 '강성 지지층의 저주'를 껴안곤 하니 알다가도 모를 게 정치다. 해결책은 없는가? 스스로 열정을 자제하는 '열 관리'밖엔 없다.

철학자 김영민 전 교수가 <산책과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갈파한 다음 명언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건강한 삶이란 무엇보다 열정의 지속가능한 분배에 달려있는 법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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