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언론은 어쩌다 "당해도 싸다"는 말까지 듣게 됐나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8-18 16: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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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사회 각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언론징벌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180석 줬는데 언론법 하나 통과 못 시키느냐", "이리저리 눈치 보다 누더기 법안 만드느냐. 후퇴시키지 말고 더 강력하게 해서 통과시켜라"라며 민주당 지도부를 압박하는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간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이 언론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게끔 선동을 해왔으니,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사자성어가 더 어울리는 쪽은 바로 언론이다.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언론징벌법을 밀어붙이려고 하는 민주당 의원들껜 미안한 말이지만, 이 법은 한마디로 말해서 국격을 크게 훼손하는 넌센스다. 그런데 그런 넌센스가 여론조사에선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건 무얼 말하는가? 그게 바로 언론의 자업자득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나의 지인은 사석에서 언론징벌법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언론은 당해도 싸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그의 논지는 이렇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미친 짓을 집권여당이 해보겠다고 나설 정도로 언론이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된 게 아닌가. 그간 그런 불신을 방치해 온 언론이 더 한심하고 괘씸하다."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나는 재미 삼아 다음과 같은 반론을 폈다.

"정치는 더 큰 국민적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아닌가? 그래서 국회의원 수를 팍 줄이자고 하면 국민의 다수가 찬성한다. 그러면 많은 언론과 지식인은 '아무리 정치가 한심해도 그런 반(反)정치는 위험하다'며 반대한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정치권은 불신과 혐오에 대해 아무런 자구책을 취하지 않고서도 그런 보호를 받고 있는데, 언론징벌법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지 언론이 자구책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해도 싸다'는 건 너무 불공정하지 않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치권과 언론을 그렇게 비교하는 게 무리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집단적으로 진영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정당들은 무슨 짓을 해도 '묻지마 지지'를 하는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묻지마 지지'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당들의 고정 지지자들을 모두 합하면 전체 국민의 절반이 넘는다. 반면 고정 지지자를 가진 언론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디지털 혁명 덕분에 수백, 수천 개로 분열돼 있는 언론은 '클릭'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수용자의 소속감이나 지지로 살아가는 게 아니다.

언론은 그간 그런 변화된 환경에 맞게 생존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각 언론사별로는 필사의 노력을 해왔지만, 언론 전체의 집단적 차원에선 그 어떤 시도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각자도생형 노력은 오히려 언론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데에 일조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각종 언론단체들의 수와 규모를 보면 집단적 노력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데도 이렇다 할 시도를 하지 않은 채 언론징벌법과 같은 비상사태에 반대 성명을 내는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언론이 디지털 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기존의 '권력자 모델'에서 새로운 '봉사자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역설해 왔다. 그간 언론은 '권력 감시'를 최대의 사명으로 내세워 활동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도 '권력'으로 행세해 왔다. 언론은 그런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해 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간 영역에선 올바르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 국민적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언론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논조로 보도하는 언론을 싸잡아 '기레기'로 매도하는 정파적 수용자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더 두렵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정치와 무관하게 국민의 일상적 삶에서 '기레기' 노릇을 하는 언론도 많으며,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마저 언론에 대해 불신과 혐오를 갖게끔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언론계는 이런 문제의 실상을 기록한 백서라도 하나 발간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 된 이유를 찾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면서 모든 언론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는가? 일부 언론의 약탈적 행위를 상시적인 뉴스로 고발하면서 스스로 언론계 정화를 위해 애쓴 적이 있는가? 없다! 언론은 모래알이다.

내가 말하는 '봉사자 모델'은 춥고 배 고프게 살라거나 희생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기존의 권력자 모델에서 벗어나 낮은 곳에 임하는 봉사자의 체질과 자세를 갖고 국민적 신뢰를 밑천 삼아 장사를 해보라는 뜻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평판과 이익을 위해서라도 사이비 언론을 스스로 가려내 정당한 응징을 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겨날 게 아닌가 말이다.

언론이 그런 노력을 하는 자세라도 보여왔다면 언론징벌법과 같은 반(反)민주주의적인 발상은 감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언론징벌법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부메랑으로 돌아가 민주당에 큰 타격을 입히겠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 나라 꼴이 이게 무언가. 그런 답답한 마음에 "당해도 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언론이 앞으로 언론징벌법을 맹비난하더라도 자업자득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각오를 밝히는 말을 곁들이면 좋겠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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