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된 비극

UPI뉴스 / 기사승인 : 2021-08-25 11:03:55
  • -
  • +
  • 인쇄
'언론징벌법', 정말 피해자 구제 위한 충정인가
그러면서 왜 가짜뉴스 진원지 유튜브는 방치하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이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거의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일 게다.

이건 분노보다는 비애의 심정으로 생각해볼 문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은 얼마나 용감하고 이타적인가! 존경을 누려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싸움에서 승리해 권력을 잡은 그들에게서 괴물과 비슷한 면을 보게 된다면 이런 비극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세력은 괴물과 같은 독재정권과 싸운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들은 독재정권들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 열의가 충만한 나머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허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좋은 뜻으로 해석하자. 문제는 그들이 선과 정의를 대변하는 동시에 그걸 독점해야만 한다고 믿는 심층 의식에 있다.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은 독재정권과는 전혀 다르다. 무능할망정 사회적 약자와 민생을 돌보겠다는 선의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방법론은 놀라울 정도로 독재정권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외형과 콘텐츠가 비슷하다는 게 아니다. 그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문 정권의 합법적 방법을 독재정권이 저지른 '공권력의 폭력화'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심층 의식에 자리 잡은 국정운영의 기본 전제가 비슷하다는 뜻이다. 강력한 규제, 응징, 청산, 척결, 타도, 강행 일변도다.

여태까지 논란이 된 주요 정책들을 생각해보라. '포지티브'보다는 '네거티브' 일변도였다. 규제와 응징 중심이었다. 규제할 걸 규제하고 응징할 걸 응징하는 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박수 받을 일이다. 문제는 그게 거의 전부일 뿐, '포지티브'한 방안은 드물었고, 창의와 혁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경제 문제마저 도덕적 규제로 대응하는 '경제의 도덕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1년 넘게 그 격렬한 '검찰개혁 전쟁'을 주도했으면서도 정작 일반 시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사법 개혁'은 온데간데 없이 실종돼 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보기에 정의로운 사람들을 높은 자리에 많이 앉히면 된다는 식의 '인사 정책'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정의와 공정이 훼손된 경우가 많았지만, 편가르기에 중독된 문 정권은 그런 문제조차 느끼질 못한다.

부동산 정책은 성선설로 대응해선 안될 일이었다. 한국인의 안전 욕구와 욕망이 가장 거세게 분출하는 이 문제는 정책적으론 성악설로 대응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 감안한 종합적 처방이 필요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이 문제를 규제 일변도의 '도덕 전쟁'으로 둔갑시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문 정권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유주택자가 무주택자보다는 많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방역정책은 어떤가. 국민 다수가 'K-방역'을 지지하는 동시에 자랑스러워했다. 일부 서양 언론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억압적인 방식이라고 비판했을 때에도 우리는 그들을 비웃었다. 문 정권의 'K-방역'에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가는 백신 정책이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K-방역'에 도취된 문 정권의 마인드는 규제 중심의 '네거티브'에만 치중한 나머지 백신과 같은 '포지티브'는 소홀히 했다.

문 정권은 'K-방역'의 성과 덕분에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건만, 그걸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면허장으로 오인해 힘으로만 밀어붙이려는 '입법 독재'에 재미를 붙이고 말았다. 현재 논란중인 '언론징벌법'만 해도 그렇다. 그 선의를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먼저 눈에 띄는 건 언론에 대한 강한 적대감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언론에 최대 3배의 징벌적 배상 책임을 물리도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생각 같아서는 30배, 300배 때리고 싶지만, 우선 없던 법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적대감이 증폭되면서 3배는 5배로 늘었다.

2021년 8월 2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언론에 5배의 징벌적 배상 책임 조항을 넣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5배도 약하다"며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한 징벌을 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한 충정으로 한 말일까? 그렇다면 왜 가짜뉴스의 주요 진원지인 유튜브와 1인미디어는 그대로 방치하면서 디지털혁명에 치어 다 죽어가는 전통적 언론에 대해서만 그렇게 열을 올리는 걸까? 왜 언론의 네거티브한 측면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하면서도 포지티브한 측면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는 걸까? 보수·진보언론이 합동으로 사납게 달려든 국정농단 보도 덕분에 정권까지 잡은 문 정권은 언론징벌법 체제 하에서도 그런 보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걸까?

그럼에도 인간이 희망 없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아직도 문 정권에게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규제, 응징, 청산, 척결, 타도, 강행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모두의 역량을 일깨우고 발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국정운영의 기조를 전환하면 좋겠다.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저작권자ⓒ U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

핫이슈

+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