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된 586, 이제 젊은 세대에게 주인 자리 물려줘야"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11-30 16: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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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하응백 산문집 '개뿔 같은 내 인생'
흥미로운 낚시, 역사, 문학, 칼럼, SNS 글
운이 좋았던 '양아치 꼰대'는 되지 말아야
"이만하면 말년의 '다산'이 부럽지 않다"
'물고기 한 마리 속이기 위해 인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온갖 지혜와 꼼수와 창의력을 발휘한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인류 문명은 물고기를 속이는 과정에서 탄생한 찬란한 부산물이다. 잔인한 인간, 낚시꾼이여! 너로 인해 문명이 탄생했노니.'

문학평론가 하응백(60)은 어부에 가까운 소문난 낚시꾼이다. 낚시TV 출연은 물론 낚시 이야기만 따로 묶은 책도 펴냈고, 페이스북에서는 지속적인 어획 보고 포스팅으로 뭇 페친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다. 그가 등단 30년 만에 처음으로 묶어낸 산문집 '개뿔 같은 내 인생'(휴먼앤북스)도 낚시 관련 에세이들로 1부를 먼저 시작한다. 

▲등단 30년 만에 처음으로 본격 산문집을 펴낸 문학평론가 하응백.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하응백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살아온다면 자신의 삶과 바꾸자고 할 것이 틀림없다고 호언한다. 다산의 작은 소원은 부가범택(浮家汎宅: 물에 떠다니면서 살림을 하고 사는 배)이었는데, 말년에 고기잡이배를 구해 집처럼 꾸미고 '산수록재(山水綠齋)'라는 현판을 달아 한강을 떠다니면서 낚시하고 시를 짓고 풍경을 즐겼다고 소개한다.


'내 소원을 다산의 부가범택, 수숙풍찬(水宿風餐: 물위에서 자고 바람을 먹는다는 뜻)에 슬쩍 끼워넣는다. 내 배를 장만할 형편은 못 되어 선비(船費)를 내고 선장이 모는 낚싯배를 타는 점이 다산과 다르다. 다산처럼 한강의 풍경을 구경하며 여기저기 다니지는 않지만, 대신 동·서·남해 삼면의 바다를 누비며 잡아온 여러 바닷고기를 맛본다. 이만하면 말년의 다산이 부럽지 않다. 다산이 살아온다면 바꾸자고 할 것이 틀림없다.'('부가범택, 다산 정약용과 하응백의 마지막 소원')

하응백이 처음 낚시와 인연을 맺게 된 공간은 바다가 아닌 산이었다. 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90년대 초반에 등산을 갔다가 계곡의 피라미에 눈독을 들인 뒤, 마침 일직하던 학교 서가에서 발견한 '견지낚시입문'을 통독하고 가평 계곡으로 달려가 그곳 피라미들을 포획했다. 겨울이 되니 시즌이 끝나 하릴없이 덕적도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 택시 기사의 조언을 듣고 본격 선상낚시에 돌입했다. 이후 그는 서·남·동해를 누비며 우럭에서부터 광어, 열기, 주꾸미, 참돔, 돌돔, 갈치에 이르는 다양한 어종을 넘나들며 틈만 나면 배 위에서 살았다. 복잡한 세상과 인간들을 벗어나는 중독성 도피 행위는 아니었을까.

"아니요. 도피는 아니고, 나는 좀 실속파라서 가서 잡지 않는 낚시는 안합니다. 왜 안 잡을 낚시로 시간을 때웁니까. 강태공이라는 사람은 정치를 하기 위해서 낚시를 핑계댄 것이지만, 나는 잡기 위해서 갑니다. 다산도 부가범택으로 유유자적한 것 같지만 내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용주의자였습니다. 노는 것이지만, 고기도 잡고 노는 거죠. 낚시의 우연성, 의외성도 매력이지만 잡아서 먹는 실용적인 면도 중요합니다. 낚시에 철학을 담는 건 질색이고, 재미로 하는 겁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산문집에 수록한 낚시 이야기는 독자들의 흥미를 배려한 미끼인 셈이다. 이어지는 글들은 신춘문예 문학평론(1991년 서울신문)에 당선된 이래 30년 동안 벼려온 필력이 펼쳐지는 다채로운 내용이다. 2부 '윤두수의 별장 마을에는 꽃이 지고'는 역사에서 얻어낸 자료를 바탕으로 펼치는 이야기들이고, 3부 '「오늘 하루만이라도」라는 시'는 문학 평론, 4부 '꼰대의 사명'은 칼럼, 5부 '이 아름다운 지구에'는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들에서 뽑아 수록했다.


'다른 「꼰대」도 아닌,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현재 한국사회에서 「꼰대」는, 주인 자리를 젊은 세대에게 물려줄 정신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젊은 세대가 주인 의식을 갖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주인 「꼰대」의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젊은 세대가 주인의식을 갖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꼰대」들의 마지막 역할이다. 그런 것을 거부하고 끝까지 「꼰대짓」을 하면, 그는 열심히 산 「꼰대」도 아닌, 역사의식이 있었던 「꼰대」도 아닌, 그저 운이 좋았던 양아치였을 뿐이다.'

하응백은 '꼰대의 사명'에서 섬뜩하게 '양아치 꼰대'까지 나아간다. 이른바 정치권 586인사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히는데,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 중 권력을 쥔 인사들은 기실 한줌에 불과하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희생됐거나 익명의 시민으로 늙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꼰대로 비판받는 맥락은 어떤 것일까.

"되게 복잡하죠.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서도 꼰대가 아닌 사람도 있고,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더라도 꼰대도 있고 그런 게 있죠. 그러니까 젊은 세대 앞에서 군림하면서 그들을 착취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다 꼰대인 거죠. 대표적인 꼰대가 젊은 애들한테 비싸게 세를 받아먹는 부류입니다. 이런 시스템 자체가 꼰대적인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과 맞물려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마음 가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혼과 출산율 걱정하는데, 저출산에 맞는 국가 개조가 필요한 거지 그들에게 무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꼰대들이 나를 따라라, 하는 그런 시대는 지나버렸습니다."

등단 30년 만에 산문집을 묶어낸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이제 그만 정리를 하고 가자"는 차원에서 "곁가지들을 쳐내고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 펴냈다고 했다. 평론집이나 대담집은 물론 연전에는 소설도 펴냈고, 국악 쪽에도 관심을 기울여 국악 해설서와 국악 인문학 이야기도 출간한데 이어 산문집까지 정리해낸 여정이다. 최종 목적지는 한반도를 공간으로 삼은 '삼국지' 같은 흥미로운 서사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학과 역사와 풍류(국악)가 종국에 만나는 지점이 이런 큰 서사인 셈이니, 지금까지 다양한 행로를 걸어온 듯 하지만 결국 한 길을 향해 달려온 셈이다. 그가 짐짓 몸을 낮춰 설파하는 '개뿔 같은 내 인생'은 정작 쏠쏠한 편이다.

▲글을 쓰는 틈틈이 낚시로 삶의 동력을 키워온 하응백은 "낚시는 재미와 실용성이 매력이지, 복잡한 철학까지 얹는 건 질색"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대부분 계획대로 못 산 이야기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장교로 군대에 가서 6개월 만에 전역을 해야 했고, 모교의 교수가 되어 안식년을 만끽하고, 해마다 겨울이면 플로리다나 바하마 제도에서 낚시를 즐겨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출판사 20년 정도 운영에 대형 베스트를 내어 빌딩 하나 정도는 소유하고 있어야 했다. 다 개뿔이다. 그래도 글을 쓰고 가끔 낚시도 가니 그나마 다행이다. 계획대로는 못 살았지만 다행인 이야기도 이 책에 출연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그런 이야기이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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